제주 1호 독립서점… '종달리 마을' 숨겨진 역사 기록가 자처

[중부매일 박은지·김명년 기자] 제주도는 예로부터 바람, 여자, 돌이 많아 '삼다도(三多島)'로 일컬어지곤 했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따르면 2022년 제주도에 위치한 독립서점 수는 총 56곳으로 서울, 인천, 경기 다음으로 많다. 그 중 지난 2014년 5월 8일에 문을 연 제주 1호 독립서점 '소심한 책방(공동대표 장인애, 현미라)'은 제주도 지도에서 놓고 보면 동쪽 끝 종달리에 위치해 있다. 돌담과 억새밭 사이를 지나 길을 돌고 돌아 가다보면 작은 정사각형 간판 너머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할 '책방맛집'답게 주차자리가 나자마자 채워지곤 했다. 마음먹고 가야 찾아갈 수 있는 자리임에도 책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쉴새없이 이어졌다. 공동대표이자 마스터 J로 지칭되는 장인애씨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저희 둘은 20대 시절부터 온라인 상으로만 서로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독특하게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서로의 글을 탐독하며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됐고 현재 서울과 제주에 머물고 오가며 온·오프라인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저희 둘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책을 좋아했고, 책방에 가서 만져보며 감동과 위로에 늘 감탄하는 편이었는데 10여년전 현미라씨가 제주로 이주했을 당시만 해도 책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특히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오니 그 기회가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고민 끝에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인 '책방'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고 그 시도가 제주 독립서점 1호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소심한 책방은 이름과 명성에 걸맞게(?) 소심하지만 진정성 있는 북큐레이션이 돋보였다. 숨겨둔 책이란 테마로 종이포장지로 가려진 책 옆에는 책장르와 선물하고 싶은 대상, 가격, 키워드, 한줄 소개 등 책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들이 나열돼 있다.
 


이뿐 아니라 '스태프 픽(STAFF PICK)'이란 코너를 통해 40여권 안팎의 책을 비치해놓고, 10여줄에 달하는 깨알같은 추천평을 일일이 적어두고 있다. 비치된 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노동 현장에서 꿈꾸듯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기 모음집인 송승언의 '직업전선', 독립출판물인 감성여행책 조예정의 '제주섬' 등 다양했다.

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 제주라는 지역특성을 오롯이 담아낸 책방 주인들의 취향이 반영돼 있다. 책 추천평을 꼼꼼히 읽고 책을 집어 넘겨보는 방문객들이 많은 이유다.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는 작은 서가를 마스터 둘(장인애, 현미라 대표는 자칭 마스터 J와 마스터 H로 서로를 호명)이 애정하고 편애하는 책으로만 채워야 겠다고 다짐하며 엄선한 큐레이션 도서들로 채웠던 것이 특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립서점들의 기본적인 콘셉트가 돼 큐레이션 책방의 의미가 없어진 상태라 소심한 책방만의 콘셉트를 찾는 일이 가장 힘들다. 나름의 방법을 찾고 때에 맞춰 새로운 시도도 하는 일이 즐겁기도 또 힘이 들기도 하지만 당연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이곳만의 매력을 알아봐주시고 N차 방문을 해주시는 손님들을 만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제주에 올때마다 들르고 있다라든지,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든지하는 방문기를 들려주시면 그만한 보람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저희가 특별히 선정해 둔 책을 골라가시고 '정말 좋았다'라는 피드백을 해주실 때 낯선 서로가 책을 통해 연결됐다고 느끼게 된다."

9년여간의 책방운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장인애 대표는 주저없이 '조개삼촌'을 꼽았다.

"책방 근처에 사시면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무심히 가져다 주신 삼촌이 계셨다. 뜨끈하게 전을 구워다가 휙 던져주고 가시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나 조개 같은 것도 툭하고 놓고 가셨다. 그런던 어느 날 책방 앞에서 꼬깃해진 종이뭉치와 낡은 노트를 들고서 주춤주춤 하시길래 이야기를 나눠보니 오래전부터 써둔 시가 잔뜩 적혀 있었다.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연서 같은 글이었다. 무심한 삼촌이 노트를 보여주시면서 책을 만들어 볼 수 있겠냐고 했을 때 많이 놀랐고 기뻤던 기억이 있다. 서툰 솜씨로 100권정도 만들어 드린 후 판매도 했다('사십열병'이란 제목의 책으로 현재는 절판). 책방을 하지 않았더라면 종달리에 사는 삼촌이 이렇게나 글을 사랑하고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모른 채 살았을 거다. 책방이 책방만으로 존재한다기 보다 개인과 동네와 연결돼 있다는 기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현재 소심한 책방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세대를 잇는 이야기 유랑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종달리의 마을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구술채록, 탐방, 교육 등을 통한 마을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장 대표에게 향후 책방운영 계획에 대해 물었다.

"책방 오픈 이후 크고 작은 행사들을 많이 해왔다. 올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종달리 라는 공간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로 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속에는 제주 4·3사건도, 6·6사건도 있고, 소금밭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어 의미가 깊다. 종달리의 역사문화지도를 만들고, 동네 탐방지도를 통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면서 큰 자극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제주 종달리 방문객들에게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안내하는 일을 구체화 하고 싶다. 현재 '밑줄'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일을 간헐적으로 하고 있는데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일을 병행하며 새로운 책들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소심한책방은 제주도 동쪽 끝 종달리에서도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대부분 일부러 찾아오시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우연히 만나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방문객 한분한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마스터 둘다 적극적인 사람들이 아니라서 마음을 잘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서가에서 마음에 들 수 있는 책을 만나실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해 정돈하고 소개하는 일로 감사한 마음을 대신하겠다. 잠시라도 책방에서 위로를 느끼시는 시간을 가지시길 희망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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