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권오중 시인·가수

10월의 끝자락. 핼러윈데이로 인하여 국내외의 젊은이들이 이태원에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쓰러지고 그곳은 슬픔의 도가니로 변했다. 자식 잃은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듯 가슴이 아프다. 그 후유증으로 11월이 몹시 아프다.

10월 29일 밤 이태원 골목길/아수라장이 되었고// 꽃다운 청춘들이/저 하늘 별이 되었습니다//애달프고 애달프다/불귀의 객이 된 영혼들이여//웅웅 바람이 울고/철썩철썩 파도도 웁니다//

아수라여 사악한 아수라여/부디 지구를 떠나거라(이태원이 운다 권오중)

뜨거운 태양에 맞서 정열을 불태우던 초록잎. 단풍잎으로 갈아입고 추파를 던지다 이내 비우고 쌀쌀해진 날씨에 성자聖者처럼 의연하게 서 있다. 갈바람에 일렁이던 황금벌판은 하얀 공룡알이 차지했다. 아무 조건 없이 뭇 생명을 키워준 대지가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황금물결 일렁이던 들판/*하얀 공룡알이 차지했다/산고를 이겨낸 산모처럼/흡족한 모습으로/누런 대지 위에 누워 있다//

인고의 땀방울/하얀 소금 되어/농심을 위로하지만/그것을 바라보는 눈길/왠지 허허롭다//

대지는/인고의 시간을/결실로 화답하고/은빛 억새는/갈바람에 하들하들/축가를 부른다(하얀 공룡알 권오중)

* 하얀 공룡알 : '생볏집 곤포 사일리지'로서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11월은 겨울로 가기 위한 교두보橋頭堡이다. 겨우살이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한 모습이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알듯,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니 이제 겨울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 된다.

가을과 겨울의 갈림길에서/텅빈 들녘을 바라보면/왠지 마음이 허전해집니다//설핏해지는 햇살 당기며/고이고이 감추어 두었던/고운 빛깔을 담뿍 드러내면//한여름 열정으로 불태운 초록이/단풍옷으로 곱게 갈아입고/초록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권오중 시인·가수
권오중 시인·가수

어느 날 문득 찬 바람이 불면/깜짝 놀라 부르르 몸을 떨며/화려한 옷을 벗어 버립니다//다람쥐는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집집마다 월동준비 하느라/몹시 바빠지는 계절입니다//찬 바람에 낙엽이 거리를 방황하면/사람들 발걸음이 빨라지고/마음이 조급해지는 계절입니다//그렇게 훌쩍 가을이 떠나면/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주고/의연한 나목이 되고 싶습니다(11월 단상 권오중)

가을비가 내리니 쓸쓸하다. 신발에 달라붙는 젖은 낙엽이 아니라, 갈바람에 이리저리 여행하는 마른 낙엽이 되고 싶다. 이제 늦가을 속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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