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올해 초, 환경부 국립생태원은 재활용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사람들의 환경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이름을 공모해 '자원재생 활동가'라는 명칭을 선정하고 이 명칭이 적힌 방한용품과 의복 등을 노인들에게 제공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폐지 1t을 수집하고 재활용하면 이산화탄소 약 1t을 절약할 수 있고 물과 전력도 덜 쓰게 되는 환경적 가치를 생산하므로 폐지 줍는 사람들의 활동에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폐지를 줍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적 취약계층이며 그들의 활동이 공익적 가치를 가진다 해도 사적 영역에서 보상이 이루어지면서 일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 침체로 고물상에서 거래되는 폐지 가격이 1kg 당 40~50원대 수준으로 기존 가격의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 제품 포장에 사용하는 골판지를 주로 폐지로 만드는 데 경기 침체로 포장 수요가 줄면서 폐지 가격도 따라 내린 것이다.

이를 인지한 국회도 폐지수집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인이 폐지를 줍지 않고도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반갑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난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자선단체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리어카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계속 폐지를 주우시라는 뜻인 것 같다며 씁쓸해하던 동료의 말도 떠오른다. 왜 그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폐지를 줍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경기 흐름에 따라 값이 오르고 내려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폐지처리 하나에도 경제의 흐름과 다양한 사회현상이 담겨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니 학술적 자료나 통계는 거의 찾을 수 없고 KBS 대구방송총국의 'GPS와 리어카: 폐지수집 노동 실태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이 보고서의 편집자는 '주변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지금껏 그 노동 실태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다(중략). 최저임금 10분의 1 수준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노인들. 폐지수집의 사회적 기여도 뒤에 가려진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확인했다'고 적었다.

GPS를 리어카에 달아 취재를 이어간 결과를 보면 노인들의 생활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고 폐지 줍는 노동은 하루 12시간이 넘고 평균 13km를 이동하고 있었다. 취재 기간 중 시급은 계속 낮아졌고 노인들의 노동환경이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고 적혀있다. 기억해보니 지난 6월, 이 기사도 접했지만 역시 흘려 넘겼다. 뚜렷한 대안이 없어 그저 리어카에 야광 안전띠를 둘러 위험을 예방하거나 겨울에 방한복을 지원하는 정도에서 해결책을 떠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다. 폐지를 줍는 활동은 재활용을 촉진해 자원재생 효과가 있는 공공 활동에 속한다. 그러니 이를 일자리 사업으로 전환하여 공공에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폐지를 줍는 활동에 공익적 가치를 부여하고 일자리로 전환하여 일정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어르신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지면 정말 빈곤한, 폐지 줍는 일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어르신들에게 폐지값을 쳐주던 고물상은 어떻게 될까.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없는 주택가에 사는 친구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 덕분에 동네가 깨끗해진다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관여하는 친구는 수년 전 일자리 전환을 제안했지만 안 그래도 '없는'분들 일까지 뺏으려 하느냐는 비판에 주눅이 들었단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원재생 활동으로서 폐지 줍는 일자리를 다시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일을 공익의 가치를 담아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자리 사업으로 전환하는 일이 성공하려면 그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르신들의 터전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게 전제되어야 이 일은 진정한 '재생'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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