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상철 경제부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성인 여성 2명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녀 관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집 현관문에는 가스비 5개월 연체를 알리는 올해 9월자 도시가스 연체 고지서와 월세 연체로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가 붙어 있었다.

관할 구청에 따르면 이 모녀는 기초수급자 가정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가스, 전기, 통신료 등 생활요금 연체로 파악하는 보건복지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는 해당했다. 이들은 가장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집 안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매년 반복되는 이 죽음에 끝은 어디일까?

12월 본격적인 영하권 강추위가 시작되면서 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하지만 최근 무섭게 뛰어오른 물가도 모자라 경유와 도시가스 가격까지 급등했다. 서민들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일 년 전에 비해 도시가스가 36.2%, 지역난방비 34%, 전기료 18.6% 각각 올랐다.

도시가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에 올해에만 세 차례(4·7·10월) 인상돼 전년 동기 대비 37.8% 급등한 1Mcal 당 89.99원까지 올랐다. 가스 수요가 많은 동절기(12~2월)에는 계절별 차등 요금 반영돼 1Mcal 당 92.50원이 적용된다. '서민연료'로 불리던 등유도 옛말이다. 등유는 전년 동월보다 48.9%나 올랐다.

당분간 등유와 도시가스 가격 상승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난방 서민들은 오늘도 한 겹 옷을 더 껴입는다. 지난 10월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작금의 상황에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생계와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정책과 지원이다. 정치 복지가 아닌 현실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통해 취약계층 난방비를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에너지 취약계층(기초생활수급 가구 중 노인·영유아·장애인 등 포함 가구)이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등유·LPG·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아울러 내년 3월 말까지 난방용 가스에 붙는 관세를 일정 기간 0%로 적용하기로 했다.

박상철 사회경제부 기자
박상철 사회경제부 기자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더 촘촘하고 현실적인 난방비 지원이 요구된다. 세계 경제 대국 10위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난방비가 없어 자살하는 국민은 없어야 한다.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 대설이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더 이상 차가운 죽음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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