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연말이 다가오니 마음이 무겁다. 11월 하순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았다. 어떤 사건은 잘못된 재판 결과를 놓고 해결책을 찾느라 여러 날 궁리하고 동료들과 상의해야 했다. 7월부터 라이온스클럽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아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내년도 전국 21개 지구의 책임자가 될 지구 제1부총재 교육책임자인 그룹리더 역할이 그것이다. 그간 지구 총재, 국제이사, 한국 연합회장 등에 이어 수시로 각종 교육의 강사와 지도자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차기 지구총재 후보들에 대한 교육은 처음이고, 또 코로나 이후 대면 교육이 아닌 웨비나(webinar)가 많아 강의 준비가 힘들었다.

거기에 더해 11월 말 4박 5일간 아시아 18개국 2만여 라이온이 모이는 제59차 라이온스 동양·동남아대회에서 GAT(Global Action Team) 지역책임자, 결의위원회 위원, 지구 제1부총재 그룹리더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쉴 틈 없이 행사에 참여하고, 다음 주 또한 2박 3일로 동기 총재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자주 사무실을 비운 게 마음에 걸린다. 그 사이 어느새 12월도 며칠이 지났다. 교회 한쪽과 거리에는 이미 성탄 트리가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따뜻하던 날씨도 갑자기 영하권으로 바뀌었다.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전형적인 초겨울 날씨다. 을씨년스럽다. 마음이 추워지는 느낌이다.

마음에 부담이 되어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한해 마무리를 잘해야 할 텐데, 마음만 분주하고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연초에 작정했던 것 중 과연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연간계획서와 달력을 열어 1년을 되돌아본다. 빼곡하게 차 있는 것은 재판 일정과 손님 상담 약속, 그리고 업무 내외로 할 일 목록이다. 올 한해도 내게 도움 청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 고맙다. 법률자문 의뢰한 기관·단체, 법인도 다소 늘었다. 도움을 청하는 분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려 했다. 종전에 외부 직임을 맡아 동분서주할 때는 수임한 사건을 동료 변호사들에게 수행토록 한 것이 꽤 있었지만, 올해는 대부분 직접 처리했다.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사무실에서 늦도록 재판준비와 자문업무에 임했다. 그 결과 실패한 사건은 거의 없다. 이렇게 섬길 수 있음이 기쁨이고 영광이다.

그리고 보니 연초 세웠던 계획 중 일부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지만,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다. 요즈음 느끼는 마음속의 부담은, 어차피 이 시기에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으로 치부(置簿)한다. 스트레스도 아니다. 시험도 아니다. 단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직장에서 퇴직한 선·후배 친구들이 주위에 많다. 그들이 퇴직 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갖가지 궁리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출근할 직장이 있고,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껏 쌓아온 지식과 경험으로 돕는다. 거기에 더해 봉사활동의 최고봉인 라이온스클럽에서 내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후배들을 지도하여 용기를 북돋고 있다. 다소 힘들고 부담스럽다 해도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노후준비, 운동, 독서 등 자신을 챙기는데 다소 게을렀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한해도 기적같이 잘 살아왔다. 아니, 살려졌다. 법률을 도구로 섬기고 내가 가진 것으로 이웃과 나누려는 작은 마음으로, 연초 생각했던 것보다 못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이들을 움직이셔서 부족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감사드리면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했던 이순신 장군의 말을 생각한다. 아직 내게는 꽉 찬 12월이 남아 있다. 그동안 못했던 것은 이 시기에 마치면 된다. 그마저도 못하면 내년 1월에 하면 된다. 한 해 동안 잘 살아왔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감사하며 한 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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