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도통 합의점을 찾지 못하거나 언로가 막혀 소통되지 못할 때를 경색(梗塞) 국면에 처했다고 한다. 일이 난처하거나 변통할 도리가 없는 상태로 이른바 '궁(窮)'이다. '窮'은 '동굴 혈(穴), 몸 신(身), 활 궁(弓)'이 합쳐진 회의문자다. 동굴에 임신녀가 활처럼 몸을 구부리고 앉은 형상이다. 동굴은 어둠의 상징이다. 어둠은 새벽을, 임신은 새 생명을 잉태한다. 어둠의 동굴에서 출구를 찾으려면 험로를 지나야 하며, 생명 탄생을 위해서는 산고를 겪어야 한다. '궁'은 어둠과 절망이 아닌 새벽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궁'하면 오히려 통한다. '궁즉통(窮則通)'이다. 매우 궁한 처지에 이르면 도리어 펴나갈 방법이 생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 상황까지 최선을 다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만한 노력으로 하늘이 도운 듯 모든 이로움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易, 窮則變,變則通,通則久,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周易,繫辭下傳>. 이 문장의 축약이 '궁즉통'이다

'아포리아(aporia)'. 부정 접두사 'a'와 다리, 길을 뜻하는 'poria'가 합쳐진 그리스어로 '길이 막히거나 통로가 없는 경우, 막다른 골목'을 뜻하는 철학 용어다. 그리스 선원들이 배가 좌초돼 불가항력 상태가 되었을 때 '아포리아'라고 외쳤던 것에서 유래됐다. 대화 중 부딪히게 되는 난제와 모순을 의미하는 단어로 '궁즉통'의 '궁'이다.

이 역시 폐쇄적이거나 절망적인 의미만이 아닌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의 하나다. 아포리아를 잘 이용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그가 강조한 '너 자신을 알라'는 상대방을 아포리아에 이르게 한다. 무지(無知) 상태가 되어야 진리 탐구의 여건이 조성되고 사람들은 궁구(窮究), 궁리(窮理)한다. 편견, 선입견, 억견 없는 무지에서만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여야의 극한대립, 국론과 국민 분열, 상호 불신, 갈 데까지 간 진영논리 ,책임전가, 오리발 내밀기 등으로 정치적 난국(亂局)이다. '궁'이자 '아포리아'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않으려 한다. 해결책이 없다고 믿거나 상대방의 포기와 함께 굴종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엉킨 실타래 속에 실마리가 있듯 궁하고 아포리아의 난국 속에 해결책이 있다. 다만 모두 대화와 양보를 포기한 채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사적이거나 당적 이익을 내려놓고,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대화하는 자세만이 난국을 수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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