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풍요·민첩·지혜'상징… 고난·역경 슬기롭게 대처

편집자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로 우리에게는 다양한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친숙한 동물이다. 흔히 토끼는 '놀란 토끼 뛰듯 한다', '토끼 꼬리만 하다' 등의 표현처럼 작고 나약한 동물로 비유되곤 하지만 민속문화 속에 등장하는 토끼는 슬기롭게 역경을 극복하는 동물로 표현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수궁가'에 등장하는 토끼가 그렇다. 꾀를 내어 난관을 극복한다던지 강자를 훈계하는 모습 등을 통해 토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지난해 12월 14일 열렸던 학술강연회를 비롯한 계묘년 우리 문화 속 토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토끼와 모란 (Flowers, Birds, and Animals -Rabbits and Peony) 전체 세로 153.5, 가로 380, 화폭 세로 115, 가로 34, 채용신蔡龍臣, 1850~1941, 20세기 전반, 복제, 토끼와 모란을 함께 그려 부부애와 화목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화조영모도 10폭 병풍 중 한폭이다. 토끼의 긴 다리를 자세히 표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토끼와 모란 (Flowers, Birds, and Animals -Rabbits and Peony) 전체 세로 153.5, 가로 380, 화폭 세로 115, 가로 34, 채용신蔡龍臣, 1850~1941, 20세기 전반, 복제, 토끼와 모란을 함께 그려 부부애와 화목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화조영모도 10폭 병풍 중 한폭이다. 토끼의 긴 다리를 자세히 표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 토끼는 우리 민속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열두 띠 동물 중 나약하고 연약한 동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 민속문화에서는 자신이 처한 역경을 슬기롭게 대처한 동물로도 표현되고 있다.

토끼해는 만물이 번성하는 생육과 다산의 기운이 강해서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누릴 수 있다.

토끼띠 사람은 토끼의 성품대로 온화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형으로 천성이 이상주의적이며 감수성이 뛰어나 예술가적 기질이 강하다. 특히 모든 일에 민첩하며 지혜롭고 영리하게 판단하는 사리분별력이 강하나 일을 추진할 때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주의를 해야한다고 알려져 있다. 의심이 많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가는 성향이지만 이성 간의 문제에서는 실패수가 있다고도 한다. 의식주 문제에 있어서 궁지에 빠지는 일이 적으며 풍족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특히 달에 있는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달과 토끼를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도 했다. 달은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 때문에 달은 끊임없는 재생과 영생을 상징한다.

토끼 그림 방패연(Shield-shaped Kite with Rabbit Drawing) 세로 57, 가로 40, 1960년 이후, 최상수 기증, 방패연으로 가운데 방구멍을 중심으로 하단 중앙부에 토끼 두 마리를, 양 귀에 불로초를 그려 넣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토끼 그림 방패연(Shield-shaped Kite with Rabbit Drawing) 세로 57, 가로 40, 1960년 이후, 최상수 기증, 방패연으로 가운데 방구멍을 중심으로 하단 중앙부에 토끼 두 마리를, 양 귀에 불로초를 그려 넣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토끼는 호랑이와 함께 우리나라 문학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동물이다. 호랑이와 함께 다양한 갈래에서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는 동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설·민담·판소리 등 여러 갈래의 문학에서 호랑이가 힘센 동물의 상징이라면 토끼는 약한 동물의 상징이고, 호랑이가 영험한 동물이라면 토끼는 꾀·지혜·간계 등을 임기응변으로 사용하여 위기를 곧잘 벗어나는 동물로 등장한다. 이처럼 토끼는 우리나라 문학에서 호랑이와 서로 대척점을 이루는 대표적 상징물로 인식되었다. 이는 토끼가 우리나라 문학에서 중요한 문학적 소재로 취급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토끼와 자라 목각인형, 너비 33, 높이 28.3, 광복이후, 자라 위에 토끼가 올라타 있는 형태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인형이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으로 가는 장면을 표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토끼와 자라 목각인형, 너비 33, 높이 28.3, 광복이후, 자라 위에 토끼가 올라타 있는 형태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인형이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으로 가는 장면을 표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나경수 전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는 "별주부전을 보면 용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간 자라가 토끼를 용궁까지 데려오지만 그 꾀에 왕은 속아 넘어간다"면서 "가장 높은 존재인 용왕이 가장 낮은 토끼에게 속아 바보천치가 되는 설정을 통해 판소리 다섯마당이 유교적 규범을 노래하고 있지만 근대적 의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멧토끼는 인근 중국 멧토끼와는 다른 고유종이고, 대부분의 한반도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현재 멧토끼는 과도한 사냥과 서식지 감소로 멸종위기종의 후보종인 관찰종으로 지정돼 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앞니는 두개로 보이지만 앞에 둘, 뒤에 받쳐주는 앞니가 두개 더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조영석 대구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는 "멧토끼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야생동물의 하나였으나 개체군이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그 원인으로 과도한 사냥과 서식지 감소를 꼽고 있다"며 "울산과 광주의 경우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토끼 모양 화반 ,길이 51.7, 높이 19, 조선, 지붕을 받치거나 장식할 때 사용하는 구조물로, 토끼 한 쌍이 좌우에서 복주머니를 붙잡고 있는 형태다. /국립민속박물관
. 토끼 모양 화반 ,길이 51.7, 높이 19, 조선, 지붕을 받치거나 장식할 때 사용하는 구조물로, 토끼 한 쌍이 좌우에서 복주머니를 붙잡고 있는 형태다. /국립민속박물관

토끼와 관련된 속담으로는 '토끼 제 방귀에 놀란다', '이리 죽은 데 토끼 눈물 만큼', '토끼도 자꾸 때리면 문다' 등이 있다. 이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로 육식동물을 피하기 위해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행동해야 할 것을 내포하고 있다.

보통 최악의 상황에서 대비하는 지혜를 갖춘 동물로 묘사되며 '토끼는 굴을 셋 판다'라는 표현처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비상용 굴을 만들듯 사람들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토끼의 지혜로움이 부정적으로 인식된 것으로 '범 없는 골에는 토끼가 스승이라',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 '사자 없는 산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등이 있다.

이밖에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친다'라는 속담처럼 두 가지 목표를 한 번에 성취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에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와 같이 동시에 두 가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속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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