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한 해의 경계를 건넜다. 어제와 별로 다를 건 없는데도 '새해'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제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그리고 새해에 과연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과 걱정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삶의 밝은 면을 더욱더 많이 보며 살려고 한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새해를 맞으면서, 이렇게 해가 바뀌고 달력이 바뀌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시간의 경계가 없다면 우리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에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새로움도 없고, 발전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달력도 바뀌고, 상징동물도 바뀌고, 그에 따른 덕담도 나누는 등, 새해를 맞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것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직 내가 쓸모있는 걸까 하는 우려다. 이미 장년의 나이에 들어섰고, 법조인으로서 40여 년을 살아온 나로서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위의 많은 친구가 직장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런데도 아직 변호사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뭐라고 할까? 소위 전문직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전문직도 전문성이 떨어지면 그만두어야 한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저급하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라고 하면 부끄럽다. 일하는 이유를 말할 때, 생계를 위해, 남을 돕기 위해, 가치실현을 위해, 소명의 완성을 위해 등 여러 가지로 말한다. 지금껏 섬기는 자로서 소명의 완성을 위해 일한다고 천명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법률가로 제대로 섬기는 게 쉽지 않다. 쌓아온 경력과 경험만 가지고 할 수 없다. 기억력도 감퇴하고 몸가짐도 전처럼 신속하고 예민하지 못하다. 새로운 시류나 기술에 대한 정보나 활용도 부족하다. 예전에 알았던 것을 기억 못 하는 때도 있고, 달라진 제도나 판례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법률신문 보도로는 우리나라 변호사 1인당 매출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 한다. 2021년 기준으로 변호사 1인당 매출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의 1인당 매출액 4억5천여만 원의 절반인 2억4천여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수익이 아니다. 수익은 매출의 약 30% 이하다.). 변호사 숫자는 해마다 1,500명 이상 증가하고 있고, 잘나가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생계유지도 만만치 않은 변호사가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변호사로 살아도 되는가.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신년감사예배를 드릴 때, '위로와 치유의 법률서비스'라는 말이 뇌리에 꽂혔다. 뛰어난 법률가들이 가득 찬 이 땅에서, 그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방문자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필요를 확인하고 적합한 처방을 해준다. 뜻을 다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권익을 지켜주는 일이 변호사의 사명이고, 이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하려고 애써왔고, 다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겸손하게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준다. 때로 같이 울기도 한다. 그다음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함께 힘을 모아 피해를 복구하거나 방지한다. '위로와 치유의 법률서비스'다. 빈농 집안 열두 식구가 끼니를 걱정하는 가정에서 자라며 협력과 소통을 배웠다. 은사 선후배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상호부조의 정신을 익혔다. 16년여 군법무관 생활을 통해 인내와 배려를 배웠다. 26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 만나 관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더해왔다. 실수도 있고 부족함도 많지만, 새해를 맞아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위로와 치유의 법률서비스'. 잘 들어줄 것이다. 공감하며 위로할 것이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 그를 통해 피해를 복구하고 방지해서 결핍을 치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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