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여는 1월의 영어단어 재뉴어리(January)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 신(神) 이름에서 유래한다. 문(門)의 수호신, 야누스(Janus)가 시간의 문을 열어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누스는 머리의 앞과 뒤에 두 얼굴을 갖고 있기에, 시간적 해석으로는 지난해를 성찰하고 이를 통해 새해를 설계하라는 은유와 상징이 담겨 있다.

신년의 기쁜 소식 중 하나는 2022년 기준, 한국이 세계 강력한 국가 6위에 올랐다는 뉴스다. 미국 'US뉴스&월드리포트(USNWR)'는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등을 합산해 평가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상위권에 진입했다고 보도하여 전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1위를 차지한 미국과 더불어 한국이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의 열강들과 어깨를 견주는 강대국 반열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낭보다. 이 매체는 한국이 IT중심의 첨단기술과 서비스 기반 경제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경제국에 진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세계 85개 국가, 17,천명의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라 신뢰도가 높다. 근대국가 출발이 늦은 한국이 19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강대국 위치에 선 것은 분명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사례에서 보듯, 강력한 국가로 부상한 것이 살기 좋은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통합과 삶의 만족도가 비례해야 진정한 강국이고 선진국이다. 선두국가를 자랑하는 미국은 인종과 불평등의 양극화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 역시 '압축적 근대화'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초고령화, 불평등, 자살률 등의 부정적 지표들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성장통'(成長痛)이다. 끝없는 경쟁과 속도 중심의 가치관, 극단적 개인주의 등은 초고속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의 그림자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Daniel Tudor)가 한국 사회를 가리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괄목할만할 경제성장을 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반비례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지적이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월호의 비극적 사건 이후, 안전에 대한 국가 시스템 구축과 시민의식의 전환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슬로건만 난무한 결과다. 예상했던 것처럼 정치권은 책임 회피와 전가에 급급했고, 진정성 있는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겼음에도 정치권은 풍산개 문제로 다투는 한심한 상황만 연출했다.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가 상징하듯, 중대재해처리법이 시행되었어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더 늘어나기만 했다. 공동체의 통합도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진영과 세대,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으로 적대적인 혐오가 넘쳐나는 실정이다. 경제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했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경시되고 공동체에 균열이 일어난다면 진정한 강국이 아니다. 개인의 삶으로 치면 졸부의 삶을 사는 꼴이다.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즐기고 관조하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규정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성장보다는 성숙이 필요하고, 삶의 질과 균형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시점에 왔다. 지난해를 성찰하며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야누스의 지혜가 필요하다. 살기 좋은 나라는 국가의 미래를 담당할 청년들의 희망이 살아있는 사회다. 기성세대의 책무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이 넘치는 나라'를 청년 세대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정치권이 각성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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