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조혜경 풀꿈환경재단 이사

2020년 늦여름. 후지오카 미나미(일본 작가, 라디오 진행자, 영화 프로듀서)는 소지품 제로로 시작해서 하루에 1개씩 도구를 꺼내는 100일간의 생활실험을 시작한다. 일명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라는 심플 라이프 도전기는 코로나 시국, 관심의 화살을 집으로 돌리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루에 딱 1개의 물건만 꺼낼 수 있고, 음식물은 구입 가능하지만 조미료는 카운트하며 전기·가스·수도 등의 기본시설은 사용가능하나 필요한 초기장비는 최소한도로 설정할 것'이라는 기본원칙 하에 시작된 100간의 실험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작가는 100일간의 실험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불을 선택하였다. 다음으로는 칫솔, 그 다음으로는 운동화, 목욕타월, 후드원피스,,,,,

어쩌면 생존과 관련없는 것일 수도 있고 일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일 수도 있는 물건들.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조건은 하나의 제품이 여러 가지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은 스마트폰의 필요를 가장 많이 느끼지 않을 까 싶다.

결국 100일간의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은 없어도 괜찮은 물건, 있어서 편리한 물건, 마음이 줄곧 원했던 물건을 통해 각각의 사물이 갖고 있던 의미와 잃어버린 감성의 되살림, 시간의 본래 흐름 찾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코로나 19를 통해 경험했던 새로운 시간의 흐름과 놀이문화, 관계의 계선 또는 개선의 필요성 등이 그것이리라

또 하나

코로나 19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재난, 안전, 대비, 적응력이라는 키워드이다. 후지오카 미나미는 최소한의 생활은 재난대비 훈련이라고 명칭하며 '물건없는 생활이 곧 생존본능을 일깨운다'고 생활의 팁을 전수한다. 재난상황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통신수단으로서의 스마트폰이겠지만 맨몸뚱이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실감했으니 나를 위한 재난물품은 물론이고 피난민을 도와 줄 때를 대비한 준비물품 역시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맨바닥에 오래 앉아있는 못하는 나(또는 남 아니면 나와 남)를 위한 담요, 맨발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현실, 책을 가지고 있으면 나의 세계를 지킬 수 있다는 개인적 경험과 믿음, 의외로 그 필요성이 즉시 발생한는 손톱깍기 등… 현실에서의 개인적 경험이 또 다른 현실에서는 나와 남을 도울 수 있는 필수물품이 된다는 의식은 재난상황에서 서로 다른 관심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차는 햇빛이 훌륭한 인테리어가 된다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

「사는데 꼭 필요한 101가지 물건」(후지오카 미나미 지음)을 읽으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있을 터이고 어떤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할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경험이 코로나 19 시대에 시작된 생활실험이라는 점에서 코로나 19가 우리를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 버린 것, 그리고 되살린 것이 만만찮게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가장 큰 발견은 우선 시간의 재발견, 그동안 우리는 무진장 바쁘게 살아왔구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으며 살아왔구나, 그러한 만남과 관계맺기가 의도하지 않은 이유로 중단되면서 처음으로 맞닥뜨리게된 시간, 시간적 여유, 시간이 남아도는 현실, 주체되지 않는 여유시간.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달고나 커피로 재생산되어 놀이문화로 유희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었던 예전의 기억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재탄생하여 우리의 시간개념을 재정립한다. 그리 바쁘지 않아도 괜찮아!.약간 여유있는 삶은 시간의 공백을 필요로 해! 라면서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도 그러한 공백이 필요하다고.

조혜경 풀꿈환경재단이사
조혜경 풀꿈환경재단이사

명절마다, 절기마다 온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행사를 진행하고 서로의 일신상의 정보를 공유하던 우리의 생활습관은 코로나 19로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싹 닫고 조용히 사라지는 문화가 되었다. 최근 3년간의 변화치고는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단지 코로나 19라는 전염병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일까? 매해, 매시기마다 명절증후군, 명절이혼, 명절 폭력 등 다양한 형태로 분란을 일으킨 가족행사가 일시에 중단된 것은 그간 진행되왔던 성평등한 명절나기 행사의 뒤끝도 아니고 그간의 구습이 피로하다는 새로운 자각도 아니고, 그냥 해보니 현재의 상태가 편하고 좋더라는 현실인식의 끝판왕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자구책이자 현명한 선택의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싶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좋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관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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