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며칠전 고등학교 동창생을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서로 반갑다며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후 내가 먼저 너, 누구네 집에 왔어? 하고 물으니 4층에 내가 잘 알고 있는 후배 아들 결혼식에 왔다고 하기에 그래, 잘 됐구나, 나도 후배한테 왔어 하니 그 친구도 그래, 같이 올라가자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가서 축의금을 주고 식장으로 들어가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을 나서며 그 친구가 성범아, 오랜만에 한자로 봉투에 결혼이라고 써 보니까 글씨체가 좀 그렇지만 봉투에 찍혀있는 것보다는 성의가 있는 것 같아서 정성껏 내가 써서 축하해 주었지, 그래, 잘 했어, 나도 잘 못쓰는 글씨지만 직접 써서 축하해 주었지, 그러자 그 친구는 야, 우리가 학교 다닐때에는 펜이나 볼펜으로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 데 요즘은 컴퓨터가 나와서 모두 컴퓨터로 글씨를 써서 사용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정겨움은 조금 적은 것 같아, 특히 한자도 좀처럼 손수 안 써보니까 어떨때는 내가 써 놓고도 이 글자가 맞는 지 틀리는 지 잘 모를때가 있거든, 자주 써 봐야하는 하는 데 쉽고 편리한 컴퓨터에만 의존하니 좀 그렇다 그지? 하며 말을 흐린다. 친구랑 예식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딘지 모르게 손 글씨의 그리움이 스미어 온다.

아주 오래된 글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여고시절 친구로부터 편지 한통이 왔다.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친구의 편지는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 내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 뿐이었다. 정갈하고 딱딱한 컴퓨터의 그 글은 편지내용의 아스라한 추억과 정서를 모두 빼앗아 버렸다. 공문서류 같은 느낌이 되어 두 번 읽기조차 싫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바쁘다 보니까 손에 익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다. 내용이 중요하지 글씨 도구가 뭘 중요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성이 듬뿍 들어있는 작은 손글씨 메모 나 편지 한 장이 상대방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손 글씨를 보면서 그 사람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으로 마음에 새겨보게 된다.

몇 년전의 일이다. 모 대학에서 한학기 교양과목 강의를 마치는 종강시간이 었다. 그런데 과 대표 학생이 불현 듯 교수님, 저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하며 교탁 앞으로 무엇인가 가지고 나온다. 그래서 나는 놀란 나머지 이것이 뭐야? 하니 그 과 대표학생은 교수님, 얼른 뜯어보세요 한다 그래서 마지 못해 띁어 보니 4절지 크기의 두꺼운 흰 종이에 20여명의 학생들이 작은 하트모양에 저마다 손글씨로 교수님, 한 학기동안 감사했습니다의 내용을 여러 표현으로 써서 붙여온 선물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가의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너무나 진한 감동이라 지금도 나의 서재에 코팅을 해서 보고 또 읽어 볼때 마다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참으로 귀중한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정겨움이 담겨져 있는 추억의 선물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우리는 오늘날 정보 지식의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과학문명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편리하게 함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덜 깔끔하더라도 사람의 풋풋한 정겨움이 그리워 질 때가 가끔 있다. 누구나 문명의 이기인 기계화 속에서 바쁘지만 조금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의 정성이 담겨져 있는 손글씨의 메모 한 장을 상대방에게 선물함이 어떨는지 말이다. 이것이 행복나눔이다. 오늘따라 학생들이 보내준 손글씨의 메모 한 장 한 장이 마음을 저미어 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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