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퇴근하고 나서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걷기다. 걸생누사,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걷기를 하노라면 하늘이 보이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가끔 길고양이와 마주칠 때는 눈인사를 한다. 걷다가 꼭 만나는 것이 있다. 군데군데 건널목이 있다. 신호등이 없거나 점멸등이 반짝인다. 여기를 건널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습관적으로 살피기는 하나, 차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 때는 화까지 치민다.

요즘은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한다. 차는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 차를 먼저 산다고 한다. 나는 어땠을까. 돌이켜보니, 90년대 초에 처음 차를 샀으니 족히 30년이 넘었다. 처음에 마련한 차가 자주색 르망이었다. 르망, 검색해보니 프랑스 서북부 사르트강에 인접한 도시 이름이다. 매년 자동차 경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단다. 아마도 이 이름이 맞는다면, 나도 엄청난 차로 운전을 시작한 거다. 그때 처음 차를 몰 때의 기분이란 하늘을 둥둥 떠가는 듯했다. 당시 TV 광고에서'르망 출발!'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집을 나서면 아이들이 합창하듯 이 말을 외쳤다.

세월이 흘러, 르망 이후 한 대를 더 타고 지금은 그랜저를 몰고 있다. 그랜저, 와 난 이 차를 살 때 참 망설였다. 지금으로부터 십사 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그랜저는 아무나 타는 차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잘 나가는 사장이나 고관이 타는 차로 여겼다. 적어도 내 뇌리에는 그렇게 박혀있었다. 그래서 한 단계 낮은 차를 사려고 했는데, 아내가 기왕 그랜저를 사라고 하기에 용기를 냈었다. 속으로는 정말 기분이 좋았었다. 근데 이 차가 어저께 보니, 22만 킬로를 찍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난생처음 줄곧 한 대를 몰고 있는 셈이다. 혹시 탈이 날까 봐 자주 점검하는데 며칠 전에 사달이 났다. 학교에서 퇴근길에 엔진에서 뭔가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꼭 멈출 것만 같았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가끔 도로에서 서 있는 차가 이런 거구나 하고 뇌까렸다. 간신히 정비업소까지 갔는데, 점화플러그가 문제였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어쩐다, 이 차를.

차는 몰아야 한다. 이제 차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요즘 운전을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한다. 그동안 지켜온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가장 안전 진입의 원칙과 가장 양보의 원칙이다. 추월할 때는 가장 안전할 때 진입하라. 누가 끼어들려고 하면 바로 양보하라. 이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요즘은 원칙이 하나 더 생겼다. 우선 멈춤의 원칙이다. 사람이 보이면 일단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 사람이 지나가려고 하면 무조건 멈춘다. 그리고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한다.

가끔 출퇴근길에 시선 집중! 하고 외친다. 내 이름은 시선이다. 가끔 원칙을 그르칠 때가 있다. 이때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어찌 나라고 한눈을 팔지 않겠는가. 가끔 졸음이 밀려오기도 하고, 멋진 풍경을 만나면 거기에 눈이 꽂힐 때가 있다. 이러면 정말 큰일 난다. 운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절대명령이 있다. 바로 안전 운전이다. 나로 인해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차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니 뭐니 해도, 이런 안전 의식이 무르익지 않는 한 후진국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논어 술이편 36장에, 군자는 마음이 탁 트여 여유롭다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소인은 늘 근심 걱정에 싸여 있어 조급하단다. 군자가 될 것인가, 소인이 될 것인가. 적어도 운전할 때는 이제 군자가 되고 싶다. 좀 더 느긋하게 여유롭게 운전하고 싶다. 특히 건널목에서 사람이 지나가면 우선 멈춘다. 사람을 먼저 가게 한다. 사람이 곧 빨간 불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계묘년 새해,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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