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오키나와 길을 걷는다. 2월의 벚꽃이 봄을 안긴다. 방학처럼 일정이 비어 있어 잡은 여행이 일본이다.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여럿의 의견으로 결정된 곳이다. 아열대의 따뜻한 기온이 겨울을 벗긴다. 열대 식물들이 이국적인 맛을 불러온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가장 큰 섬이지만 본래 일본 영토가 아니었다. 류큐왕국이 다스리는 독자적인 나라였다. 제주도의 2/3 정도 크기다.

가이드에 의하면, 당시 일본에게는 물론이지만 중국이나 조선에게도 조공을 바쳤다 한다. 침략의 근성을 드러낸 일본은 대만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듯이 류큐왕국 또한 메이지 시대에 오키나와현으로 강제 편입시켜 오늘에 이른다. 그들이 독자적으로 쓰던 류큐언어 또한 사라져가는 유물이 된 채, 일본어가 일상어로 통용된다. 그렇게 류큐왕조는 사라졌다. 슈리성 등 그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그 역사를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일본을 싫어한다. 여행지를 일본으로 택한 것도, 며칠씩 머물며 일본에 돈을 쓰는 것도 싫다. 그런데도 가게 되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 거리를 누빈다. 그것도 싫다. 그들 중에 하나로 합류했으면서도 마음은 그렇다. 싫어하면서도 가보면 배울 점이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질서 있고 깨끗하고 예의 바르다. 얄미우리만큼 실용적이다.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즉시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재탄생시킨다. 작고 예쁘면서도 견고한 제품을 보면 야무진 근성을 느낀다. 그래서 더 싫다. 아니 부러움이다.

자국의 이익 앞에서 철저하다. 역사의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애국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 나라 자체가 섬이다 보니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은 욕망, 호전성을 DNA로 가지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호전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키나와는 아픔이 많은 땅이다. 현재 일본령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슬그머니 정이 간다. 대만이나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했지만, 그대로 일본의 한 도시가 된류큐는 또다시 미군이 점령하여 27년 세월의 아픔을 겪어냈다. 태평양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다. 1945년 4월, 미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하였고, 일본은 3개월여 강력한 방어전을 펼치면서 일본군 10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곳이다. 1972년 미군으로부터 일본에 반환이 되었지만, 여전히 기지는 남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국제거리에서 혼재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진천에도 6·25 한국전쟁 이후 문안산 꼭대기에 미 공군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문안산 아랫마을 사석에 미군 문화가 자리했었다. 일명 양색시촌이라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다. 그 마을에 살던 반 친구는 가끔씩 미제 물건을 자랑하며, 미군과 양색시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미군을 상대로 생업을 이어가던 여인들, '양색시' '양공주' 얼마나 눈물겨운 말이었던가. 우리의 슬픈 역사다. 외형적으로 오키나와의 국제거리처럼은 아니지만, 밑바탕에 흐르는 정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류큐왕조는 그들이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바람의 피해가 크다. 모든 태풍이 지나는 길목에 있다. 언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지 몰라 건물의 채색도 하지 않는다 했다. 회색 도시다. 일본의 각 현 중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이면서 행복도는 1위라 한다. 무뚝뚝하지만 종종대지 않고 느긋한 성격 때문인가. 아니면 자연에 순종하는 심성 때문인가.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류큐왕국은 독특한 전통적 문화유적과 관광산업으로 급성장한 곳이다. 2천년 슈리성터가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일본을 다녀오면서 그들의 견고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생각해 본다. 남 탓이 아닌, 내 힘을 키우는 것만이 이기는 길이다. 오래 묵은 겨울을 벗고 새뜻한 봄을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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