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세상이 변했다. 이성에게만 해당하던 성추행의 시대는 지났다.

"우정의 표현으로 만질 수도 있지"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직 시의장이 여ㆍ야당 소속의 동성 의원을 모두 성추행하며 검찰로 넘겨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상병헌 세종시의장의 동성 간 성추행 사건은 지난달 20일 '강제추행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혐의가 입증되면 상 의장에게 적용된 성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한다. 법이 현대 사회가 남녀불문 성(性)에 대해 민감하다는 사실을 방증한 것이다.

의장직 적격성에 논란이 일자, 의장 불신임안이 대두됐다.

하지만 연이은 불신임안 상정은 같은 편 '의장 감싸기'로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세종시의회는 국민의힘 7석, 민주당 13석으로 다수당인 민주당의 결단 없이는 어떠한 안건도 상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 차례나 이어진 의장 불신임안 미상정으로 미루어 볼 때, 상 의장의 혐의 결과가 날 때까지 판세는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본회의 의사일정변경동의안'이 기명으로 진행된 탓인지, 돌연 내부 전략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전 의원들의 인터뷰와는 다르게 민주당은 똘똘 뭉쳐 의장 방어막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러한 '버티기'가 과연 차후 민주당에 득이 될지 의문이다. 당내 이미지 타격을 고착화하면서까지 안고 가야 할 여지가 있냐는 여론도 지배적이다.

지역 커뮤니티의 '정치적 수싸움'이라는 반응과는 사뭇 달리, 나성동 식당에서 들려오는 20대 청년들의 대화는 상반됐다.

그들은 성추문 프레임이 씐 민주당의 속칭 단어를 사용하며, 세종시 정치 발전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어물쩍 넘기면 희석되겠지"라는 여론 형성은 2~30대에게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수사 중인 사건인 만큼 법적 처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의장이 보기 좋게 자진 사퇴했으면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가 쫓겨나는 뒷모습이 아닌, 책임감을 짊어지고 내려놓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그간 민주당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그 말로가 명료했다. '성(性) 프레임'에 갇힌 민주당이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칼을 빼들어야 할 시점.

구겨진 세종시와 시의회의 면(面)을 펴기 위해서 민주당은 '버티기 카드'를 고를지 '버리기 카드'를 고를지 용단을 내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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