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사들이 소진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잘 몰라서' '내가 자원이 없어서' 누군가를 돕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이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가 없거나 정보를 알아도 어디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들이 사례마다 느끼는 업무부담이 적은 편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만능키가 되어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서비스가 세분화 되어 있다보니 전문성을 가지는 장점은 있으나 자기 영역 이외의 내용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노인돌봄만 해도 맞춤 돌봄과 장기요양 제도가 다르고 시설도 여러 유형이 있다. 여기에 의료서비스까지 포함하면 그 정보량은 가늠이 안된다.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이나 여기까지 오게 도와주신 주변의 선생님들이 모두 노인인 상황이고 노인복지하는 친구들이 지천이라 많은 이야기를 듣고 체험한 탓에 다른 사람보다는 '노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물론, 일상에 그것이 잘 녹아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적어도 나는'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굳이 서론이 긴 것은 최근에 경험한 부끄러움 때문에 변명이 하고 싶은  것 같다. 

 얼마전 상당구치매안심센터 회의에 참석해 본 영상 한 편 덕이다. 치매어르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3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었다. 청주 성안길에서 치매어르신처럼 행동하는 할머니 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담은 모의실험 영상. 도움을 요청하는 할머니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했다. 할머니는 치매 노인이니 가족이 찾고 있다는 표식(스티커)을 가방과 옷에 붙이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할머니를 돕지 않았다. 치매노인처럼 양말도 짝짝으로 신었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도 입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고 가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행인 건 실험 종료 직전 할머니를 도와준 1명의 시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시민 덕에 우린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나라면 어땠을까. 직업상 난 바로 할머니의 상황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할머니를 믿었을까? 진짜 치매 노인인지 아닌지 거리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양말을 그리 신었다고, 표식이 있다고 말을 걸지는 못했지 싶다. 세상이 흉흉해 낯선 이의 상황에 개입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할머니를 외면한 영상 속 사람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저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해보니 대부분 외면했을 것 같단다. 하지만 치매 어르신으로 의심된다면 앞으로 말을 걸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그나마 노인을 연구하고 모시는 우리도 잘 모르는 게 많으니 노인을 대한 적이 없거나 노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분들에겐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사회복지사들은 '인식개선'을 가장 중요한 일로 꼽는다.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정말 중요한 단어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너무 먼 이야기 같지만 조금 살아보니 성큼 다가와 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살만한 세상은 젊은이들이나 비장애인에게도 매우 편리한 세상이 된다. 

 퇴직하신지 10년이 훌쩍 넘은 스승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시절 나를 가르치던 까랑까랑한 소리가 아닌 뇌경색 후유증으로 어눌하고 느려진 말투 속에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어주시는 그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났다. 어쩌면 이게 어른의 마음일지 모른다. 마음이 쓰이는 제자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시는 큰 사랑.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거리의 그녀가 내 부모일지도, 내 스승일지도 모른다. 아니 누군가의 부모이자 스승일 것이다. 위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길에서 짝짝이 양말에 신발을 바꿔 신었거나 한겨울에 맨발로 다니는 등 뭔가 맞지 않는 어르신을 보면 먼저 말을 걸어보자. "어르신, 제가 도와드릴까요?" 이마저도 어렵다면 경찰서(112)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살만한 세상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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