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더 글로리 시즌2에서 가해자 박연진이 피해자 문동은에게 뱉은 말이다. 며칠 전 종영한 더 글로리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앉은 자리에서 5시간 동안 내리 보는 이 드라마에서 만큼은 제발 그 권선징악이 실현되길 바랐다. 드라마의 결말은 18년동안 지옥에서 살던 피해자의 복수로 시청자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현실과는 다른 인과응보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것이다.

이런 정의의 심판이 최근 정부 인사 임명에서 실현됐다.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지 하루만에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발목을 잡힌 것이다.

정 변호사 아들은 지난 2017년 고등학교 진학 중 또래 친구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다. 다음해 강제 전학 조치를 받았으나, 정 변호사의 아들을 위한 고슴도치 사랑으로 처분 취소 줄소송이 이어졌다. 2019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 강제 전학 처분이 내려져 결국 정 변호사 아들은 전학을 가게 됐으나 그 이상의 처벌은 행해지지 않았다. 이후 정 변호사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정시 전형으로 입학해 더 글로리 시즌1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2023년, 과거 아들의 사건으로 정 변호사가 임명에 낙마하며, 비로소 부조리가 바로 잡히는 듯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순신 아들 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해당 법은 대입 정시에 학교폭력 연루 여부 등 인성 평가가 반영되도록 하고, 고위공직자 임명 시 그 자녀의 학교폭력 전력도 조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현직 대통령의 인사가 낙마하자, 그간 곪아 있던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이 전국적으로 터져 흘렀다.

지난 2일 김현옥, 김효숙, 안신일 세종시의회 민주당 교육안전위원 3명은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정순신 사태 방지법'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해당 위원들은 "세종시교육청에 강력한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대응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며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한 대책 수립에 앞장설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표윤지 대전·세종취재본부

미디어의 힘이 이토록 거셀 줄 몰랐다. 학교 폭력에 대한 인과응보가 더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됐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이를 악용하는 방지법이 뒷받침 돼야 진정한 학교 폭력 근절이 실현될 것이다.

전국을 뒤흔들며 국회까지 올라선 더 글로리의 영광. 현명한 법 제정으로 이제나마 피해자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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