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나에겐 쓸 수 없는 돈이 있다. 오천 원짜리 지폐 네 장이랑 천원자리 지폐 네 장인 총 2만 4천원이다. 쓰지 않는 다이어리에 이 돈이랑 작은 수첩 두 개를 보관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 것이다.

아버지는 2019년 12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몇 년을 아프시다가 돌아가셔서 더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많이 아프셨지만 나중에 치매증상도 점점 심해졌다. 아버지는 힘든 살림에 장남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삶의 무게가 많이 무거웠을 것이다.

많이 아프실 때 아버지는 돈 좀 달라고 했다. 아내는 갖고 있던 돈 중에서 새 돈인 2만 4천을 아버지가 입고 있던 티셔츠 주머니에 바로 넣어 드렸다. 아버지는 누가 가져간다고 옷핀으로 주머니를 꽂아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돈이 전 재산인양 늘 확인을 했다.

그 돈은 결국 아버지가 갖고 있던 마지막 돈이 되었다. 그것마저 쓰지 못하고 놓고 가셨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여러 일을 했다.

집 뒤란에는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틀이 있었다. 아버지가 붕어빵 장사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그만둔 것인지 뒤란에 있었다. 나는 붕어빵 틀에 모래나 흙을 넣어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붕어빵인지 홍합인지 팔다가 집으로 갈 때였다. 아마도 어렸던 나는 졸리기도 하고 가는 길이 멀어 아버지가 끌고 가는 리어카에 탔다. 그리고 반쯤 기대 누웠다. 그때 리어카에 화덕에서 새어 나오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아버지는 나에게 두 가지 미안한 것이 있다고 했다. 연탄가스 이야기와 활옥동굴에 일하러 다닐 때라고 했다. 4~5살 쯤 한겨울 밤이었다.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나만 둘이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새벽일을 가는 아버지를 맨발로 쭐래쭐래 따라 나섰다. 아버지는 추우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자꾸 따라갔다.

아버지는 옆에서 주운 막대기로 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자꾸 따라왔다간 맞는다는 표현이었다. 그래도 따라갔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작은 돌을 주워 자꾸 자꾸 내게 던졌다. 할 수 없이 따라갈 수 없었다. 눈물에 콧물이 범벅이 되었고 꽁꽁 언 발과 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버지는 커가는 나에게 표현을 잘 하지 않으셨다. 단지 내가 좀 몸이 약해 늘 미안해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한테는 딱 한 대 세게 맞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그것 또한 마음에 걸려 하셨다.

커가면서 나 또한 아버지께 많은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을 넘게 하루에 한 번씩 울었다. 드라마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밖의 풍경을 봐도 아버지가 연관 되었다. 눈물이 나고 우울했다.

한 달 반쯤 지났을 무렵 꿈속에 아버지가 처음 나타났다. 아버지가 깨끗한 외투를 입고 땅에서 하늘로 점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 천국 간겨? 아버지 천국 간겨?"

나는 이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점점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편안한 얼굴로 나를 향해 한 손을 계속 흔들어만 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하늘로 향해 올라갔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눈물이 멈췄다. 우울함이 사라졌다.

지금은 편안하게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평소 사용하던 작은 수첩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써져 있다. 친척들 몇 명과 아버지 형제들 전화번호다. 그리고 아버지랑 함께 다니며 일했던 사람들이다.

정말 몇 명 안 된다. 그 수첩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참 외로웠을 것 같단 생각이 또 든다. 그러면서 나도 아버지를 제대로 대하지 못해 벌로 더 많이 외로워도 달게 받을 것이다. 수첩에 마음 담아 쓴 글씨를 보면 아버지의 향기가 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나와의 추억을 담은 동화를 꼭 쓰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오롯이 한 권 남기고 싶었다.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가 작년 여름 '활옥동굴과 아이'란 동화를 썼다. 그 동화 속에서 어릴 적 아버지와 나를 만날 수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를 이렇게 또 만날 수 있어 좋다.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도 '활옥동굴과 아이'란 동화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잘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는 "뭐, 이런 얘길 썼어." 라며 아주 아주 살짝 잠깐 미소를 지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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