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신부대기실로 들어섰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훅하고 들어왔다. 꽃향기 속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선녀처럼 고운 신부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인생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지 싶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인증 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축하의 말을 전하고도 바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장모님이 되는 지인을 부러워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은은한 향기가 발목을 잡았다.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진원지는 바로 신부를 나타내는 부케였다. 피치색의 엠마우드 장미와 니켈라 꽃의 아름다움에 스톡의 향기가 어우러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스톡은 꽃꽂이할 때 빈 곳을 메우기 위해 흔히 쓰던 꽃이다.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아주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학명 마티올라 인카나(Mathiola incana) 우리나라에서는 스토크 또는 스톡으로 불리고 있으며, 예쁜 우리말로는 비단향꽃무라고 한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다. 오래전 그리스, 터키, 이집트를 다녀왔다. 그리스는 유독 꽃이 많았다. 공항부터 파르테논 신전,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까지 가는 곳마다 강렬한 빨간색 양귀비꽃이 즐비했다. 깜짝 놀라는 내게 가이드는 큰 소리로 웃으며, 화훼용이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꽃양귀비가 지천이지만 그때는 별로 없어 신기했다. 빨간색의 양귀비꽃과 대조를 이루던 꽃이 스톡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제라늄이 많듯 길가의 화분이나 화단 곳곳에 양귀비꽃 아니면 스톡이 있었다. 향기도 은은해 여행객을 미소 짓게 했다. 하늘하늘 춤을 추는 양귀비꽃과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스톡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별천지 같았다.

우리말의 우수성 때문일까. 스톡이나 스토크보다 비단향꽃무가 정겹고 로맨틱하다. 꽃말은 '영원한 아름다움,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향기 또한 러브하와이나 서양분꽃나무, 미선나무처럼 진하지 않고, 달보드레하여 소소한 행복을 준다. 내한성도 강해 9월쯤 파종하여 실내나 베란다에서 키우다 보면 겨울에 꽃을 볼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 게다가 베란다나 온실에서 2월경에 파종하여 따뜻한 봄날 화단에 옮겨 심으면 초여름까지 꽃을 볼 수 있다. 꽃도 홑꽃과 겹꽃이 있고, 색깔은 품종에 따라 빨간색, 흰색, 연노란색, 자주색, 분홍색, 파란색 등 아주 다양해 구색 맞추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수수한 시골 처녀 같은 겸손함이 돋보인다. 과일로 따지면 모과요. 사람으로 말하면 마당발 같은 스타일로 쓰임새가 많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말은 얼굴이 잘생기고 예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상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으로 용모보다는 교양이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고 잘생기고 아름다움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는가. 얼굴은 예쁜데 말이나 행동이 교양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이다. 그래서인지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는 말이 있다. 마당발은 일색은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품어주는 꽃으로 말하면 비단향꽃무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둥근 턱을 가진 사람을 동경했다. 턱선이 부드러운 사람은 비단향꽃무처럼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가슴도 넉넉해 보였다. 왠지 드레진 삶의 소유자로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 싶었다. 주위에서 나볏하다고는 하나, 나 자신이 허점투성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향꽃무, 사람으로 말하면 나를 내세우기보다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존재하고 빛이 난다는 마음의 소유자와 같다. 절색은 아니지만, 박색도 아닌 호평 일색인 사람 말이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니 부부지간은 물론 인간관계에서 비단향꽃무 같은 사람이 최고이지 싶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촉촉이 내렸다. 천상수를 머금은 나무와 꽃들이 생기를 뿜어낸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사랑을 머금고 있다. 사랑은 인간을 완성하고 인생을 창조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비단향꽃무의 꽃말처럼 영원한 아름다움, 변하지 않는 연분홍빛 사랑의 향기가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 울려 퍼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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