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후생가외(後生可畏), '뒤에 오는 이들을 두려워함이 가하다'라는 의미다. 후배들이, 젊은이들이 더 뛰어나고 똑똑할 것이란다. 그래야 인류사가 발전하고 나날이 나아질 것이니 불편하긴 하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이 말이 그르지 않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참여하는 독서회가 있는데 어쩌다보니 그곳에서 내 나이가 가장 많다. 내가 나름 배우는데 그리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곳에 가면 주눅이 든다.

열 명 조금 넘는 회원들이 모여 두 주 동안 한 책을 읽고 토론했는데 발표들을 얼마나 잘 하는지 10분 정도는 청산유수(靑山流水)로 '식은 죽 먹기'다. 나는 길어야 2~3 분이다. 그것도 한참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쏟아놓아도 뒤엉켜 결론이 꼬일 때가 많은데 그들은 여유 있게 처리한다.

그렇게 성황을 이루던 독서회가 코로나로 휘청거렸다. 코로나가 끝을 보이는데도 회복이 되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최근에 회원이 부쩍 늘며 걱정이 일거에 사라졌다. 그동안 주춤했던 이들이 경제 침체기에 내적 충실을 기하려 독서와 토론을 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일로 독서회를 두어 번 빠졌더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 토론에 임하는 자세가 더욱 진지하다. 다룬 책이 1960년대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었다. 환경 분야의 고전이다. 화학약품 사용의 위험성을 알리고 사용량을 줄이자는 것으로 많은 예를 통해 경각심을 일으킨다. 과학서적 같지 않은 깔끔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화학약품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봄이 와도 새들이 울지 않고 벌들도 날지 않아 "쥐 죽은 듯 고요한", '침묵의 봄'이 되리라는 끔찍한 경고였다.

나는 두어 마디 밖에 못했다. 화학약품에 관한 지식도 없고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능력이 없다. 기존회원들도 어지간했지만 새로 참여한 회원들의 실력은 발군(拔群)이었다. 어려운 과학 전문용어도 능숙하고 다양한 분야의 박학한 지식을 보여주었다. 가히 후생가외였다.

잘못된 발언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줄어들었다. 이 상황이 흥미진진하다. 내가 어리숙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 부담은 적고 평소 발언이 적으니 왜 말을 않느냐고 몰아치지도 않을 게다. 다른 회원들이 쏟아내는 보다 정확하고 풍성한 정보에 내 지식과 상상이 더 풍요로워 질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공부한 시대가 나보다 늦으니 더 향상된 학문을 배웠을 게고 더하여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접할 것이다. 정보에 접근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앞선 세대들이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배워서 사용한다면 이삼십 대는 그 문화 속에서 자라났다. 나이 든 이들은 학습 기회가 적고 속도가 느리지만 젊을수록 기회가 많고 속도도 빠르다. 그들은 쉽게 배우지만 나이 많은 이들은 쉽지 않다.

위안삼기는 내 지식과 신념은 내 자신이라는 판단의 여과기를 거친 온전한 내 것이지만 곧잘 만나는 후생들의 지식은 정보의 습득을 통해 얻기는 했지만 아직 자기화를 거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것까지 거쳤다면 정말 무서운 후생들이다. 후생들이 무서워야, 대단해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챗GPT가 등장해 여러 면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제 후생만 두려워할 게 아니라, 가늠하기 어려운 속도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인공지능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학습한 것은 잊지 않으니 경쟁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학습이 무의미한 시대가 왔다. 이제는 그것들을 응용한 창조와 상상의 시대다. 후생과 인공지능을 모두 앞서가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을 아는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역시 후생가외를 외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작아지고 뒤 세대가 거인이 되어가는 걸 보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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