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내가 엄마고 할머니인데 칼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엄마 생각이 이렇게 나다니……."

칼국수를 먹던 고두심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맛볼 수 없던 맛이다"라며 순간적으로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구룡포시장에서 간판도 없는 허름한 칼국숫집. 홀로 칼국수면 반죽을 밀고 있던 주인 할머니와 반가운 포옹을 나눈다. 드라마 촬영할 때 인연이 되었다. 칼국수가 나오자 국물 한 숟갈을 맛보고는 "이 맛이야, 이 맛"이라고 극찬하는 고두심을 보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았구나 싶었다.

일과를 끝내고 유독 피곤한 날 따끈한 국물을 먹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칼국수가 생각난다. 늦은 밤 집으로 터덕터덕 갔을 때 따끈한 된장찌개 끓여놓고 고생했다고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도 그렇다.

그런 날은 '시골 할머니 손칼국수' 식당으로 향한다. 큰길에서 약간 들어간 곳, 주차장은 딱히 없지만 늘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황태와 감자 약간 들어간 뽀얀 국물의 칼국수는 시원하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데 입에 당긴다. 맛이 깔끔하다.

시간과 정성으로 우려낸 황태육수는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푹 고아낸 육수에 직접 반죽하여 썬 국수를 넣는다. 면발이 쫄깃하고 야들야들하다. 한 접시는 그냥 그대로 먹고 다진 지고추를 넣거나 다데기양념을 넣기도 한다. 맛을 바꿔가며 먹는 맛도 좋다. 기본 찬은 열무김치와 배추겉절이다.

할머니가 아들 내외랑 운영하는 식당이다. 요즘은 칼국수를 아들이 만든단다. 식당 한켠에 작업대가 있다. 언젠가 오후 한산한 시간에 갔는데, 작업대에서 칼국수 면을 밀고 있었다. 하루에 20장을 만든다고 한다. 날씨에 따라, 수확한 밀가루의 상태에 따라 반죽의 점도가 달라져서 홍두깨로 미는 시간은 달라진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눈이나 비 오는 날, 흐린 날에는 따끈한 수제비, 칼국수가 당긴다. 할머니 식당에서는 둘을 합쳐놓은 칼제비를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애틋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더구나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은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집까지 십 리 길 걸어오면 보리쌀을 삶아 밥을 하거나 칼국수, 수제비를 주로 하였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조금 섞어 소금과 물을 넣고 반죽한다. 잘 뭉쳐지고 쫄깃함을 위해 반죽을 치댄다.

반죽을 펼쳐서 홍두깨로 밀고 다시 걷어 들여 반죽을 쫙 핀다. 그 위에 붙지 말라고 밀가루 한 꼬집 살짝 뿌려 홍두깨로 밀면 점점 더 얇아지며 커지는 국수. 펴진 국수를 차곡차곡 접어서 칼로 숭덩숭덩 썰어 놓은 칼국수는 두꺼웠으리라. 얼마나 어설프게 썰었을까 싶다.

요리만큼 투명한 것이 있을까. 차근차근 손끝에 공을 들이다 보면 들였던 정성과 시간만큼 맛을 준다.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생각에 만드는 음식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정성을 들였어도 중학생이 만든 음식 맛이 별로였을 것 같다. 그래도 밭일하고 오신 어머니는 기특하다고 하시며 맛나게 드셨다.

그 당시는 육수 낼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맹물에 국수 한 움큼 퍼트려 넣으면 국수가 수그러들며 낭창낭창해졌다. 뽀얀 몸 엉켜가며 익어갔다. 여름에는 돌담에 매달린 애호박 따다가 채 썰어 넣으면 최고의 고명이었지 싶다.

옛날의 추억은 돌아보면 아련한 그리움이다. 칼국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되는 음식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가. 붕어빵 몇 개, 군밤 몇 알, 이렇듯 칼국수 한 그릇에 행복하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봄날 날아든 나비 한 마리, 여름비에 스치는 풀꽃향, 가을 햇볕에 익어가는 사과 한 개, 벼 이삭에 알알이 맺힌 아침이슬, 처마 밑 거꾸로 매달린 맑은 고드름……. 욕심을 버리면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소박한 마음만 있어도 좋다.

나이를 먹었어도 엄마가 그리운 고두심처럼 손칼국수는 추억의 음식이다. 노곤한 일상을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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