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된 씨 간장·신선한 재료·생메주가루가 장 맛 비법"

편집자

'장(醬)맛을 보면 그 집 음식 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은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충북 청주시 내수면에는 옛 전통 방식 그대로 장을 담그는 곳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정숙 식품명인이 이끄는 '다농(多農)식품'이다. 그는 3대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장맛을 한결같이 유지·보존하고 있다. 본보는 조 대표를 만나 다농식품 장맛 비결을 들여다봤다.

 

충북 청주시 내수면에 위치한 다농식품으 3대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장맛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박상철
충북 청주시 내수면에 위치한 다농식품으 3대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장맛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박상철

[중부매일 박상철 기자] 다농식품에 들어서면 빼곡히 늘어선 1천여 개 장독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 장독대 속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3대를 이어온 지난 100여 년 세월이 익어가고 있다.

조정숙 대표와 장과 인연은 1984년부터 시작됐다. 초계 변씨 가문 27대손 셋째 며느리로 들어오면서다. 이후 40년간 500년 이상 내려온 변씨 가문 전통 장류 제조 기술을 전수 받아 보전·계승하고 있다.

현재 다농식품이 생산 중인 제품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메주·막장가루, 장아찌류 등 11~12가지다. 제품 대부분은 전국 한살림 매장에 납품된다. 일부 지역 로컬 매장, 친환경 학교 급식, 백화점 등에도 공급되면서 지난해 기준 매출 15억 원을 기록했다.

조 대표는 "옛날에는 하나로마트, 백화점, 우체국 등 많은 납품처가 있었다. 욕심을 냈다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보다는 제품 내실을 다지고 위해 판매처를 줄였다. 지금은 생산된 제품 99%는 한살림에 공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 담글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료라 말한다. 장에 기초가 되는 메주는 콩과 소금 그리고 물이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농식품은 연간 35~40톤 콩을 사용한다. 핵심 재료 콩은 한살림 생산지나 농협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소금은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30년째 공수받고 있다. 물은 초정광천수로 사용하다 최근 상수도를 쓴다.

100년 전통 장맛 비결

다농식품에 들어서면 1천여개 넘는 장독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박상철

다농식품 장맛에는 3가지 숨은 비결이 있다.

조 대표는 "장맛이 한 번 변하면 다시 원래 맛으로 돌아오는 데 3년이 걸린다. 다농식품은 한결같은 장맛을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온 100년 된 씨간장을 사용한다. 장 담글 때 씨간장을 넣어주면 일정한 장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씨간장은 다농식품 대부분 제품에 활용돼 그 맛이 남다르다. 일반 장류보다 맛이 더욱 깊고 풍미도 진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매년 씨간장이 바람과 햇빛에 조금씩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시어머니가 소금 항아리 속에 넣어져 있는 굴비를 꺼내 제사 지내는 걸 봤다. 당시 쫄깃했던 굴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방법을 씨간장에도 적용해보자고 생각했다. 소금이 채워진 항아리 안에 작은 항아리를 넣고 그 속에 씨간장을 넣었더니 간장이 줄지 않았다. 맛 역시도 그대로 보존됐다."고 비결을 전했다.

이어 조 대표는 "시어머니께 특별히 전수받은 또 다른 비법이 있다. 메주를 건져 장을 비빌 때 생메주가루를 넣어 비벼주면 일정한 맛 유지는 물론 풍미가 더해져 장이 더 맛있어진다."고 귀띔했다.
 

전국 최초 된장 명인

조정숙 다농식품 대표는 2018년 전국 최초로 된장 명인으로 이름 올렸다./박상철
조정숙 다농식품 대표는 2018년 전국 최초로 된장 명인으로 이름 올렸다./박상철

지난 2018년 조정숙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장류(된장)부문 식품명인 78호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충북에선 세 번째 식품명인이었다. 된장 부문으로는 전국 최초다.

조 대표는 1992년 다농식품을 설립해 장류 전통의 맛과 향을 구현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식품명인 제도는 우수한 우리 식품 계승·발전을 위해 제조·가공·조리 등 분야를 정해 식품명인으로 지정 육성하는 제도다.

현재 전국 제92호까지 식품명인이 지정돼 전통 식품 발전과 계승에 노력하고 있다. 충북도에는 조 대표 외 강봉석(충주시, 엿 조청), 이연순(제천시, 승검초단자), 박준미(청주시, 청주신선주) 명인 등 4명이 활동 중이다.

조 대표는 "먹거리는 생명과 연관이 돼 있다. 그만큼 믿고 먹을 수 있는 신뢰가 중요하다. 다농식품 된장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인정받고 싶다. 100이면 100명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된장으로 한국 전통 음식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4대째 이어갈 전통 장맛

조성숙 대표와 그의 딸 변수정 전수자./박상철
조정숙 대표와 그의 딸 변수정 전수자./박상철

2021년 조정숙 대표 딸 변수정 씨가 식품명인(된장) 전수자로 지정했다. 이름 앞에 '2021-78'이라는 전수 번호가 붙은 변 씨는 월 2회 전수 수업을 받고 있다.

전수자가 명인이 되려면 최소 15년이 걸린다. 명인으로부터 5년 이상 기술을 배운 후 관련 업종에 10년 이상 종사해야 명인 후보가 된다. 명인 심사는 전통성·정통성·계승발전 필요성·산업성·윤리성 등 까다로운 기준을 거쳐야 해 지정되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변수정 전수자는 "처음엔 전수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매번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누군가는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철학을 유산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2021년 후반 전수를 받기 시작했다. 정말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현재 그는 전수 수업 외에도 다농식품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도맡고 있다. 변 전수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다농식품 '명인의식' 이름을 내건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다. 소비자 소비 패턴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바뀐다는 점에 주목해서다. 이러한 판로 다각화로 다농식품은 소비자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조 대표는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격히 변하는 시대 흐름과 발맞춰 현대와 어울리는 것도 필요하다. 토마토로 고추장을 담그는 시도처럼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제품을 지속 개발할 것이다. 딸과 함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다농식품 성장은 물론 대한민국 전통 장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조 대표는 변 전수자와 함께 장 담그기 교육에도 집중하고 있다. 교육 대상은 주로 아이들이다. 그는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전통 장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이다. 전통 장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수시로 교육을 다닌다. 정식 교육이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장 담그는 비법을 알고 싶다면 알려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장은 곧 나 본인이다.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 순간 소홀히 할 수 없다.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장을 담그는 이유다. 무엇보다 전통 장이 후세에도 고스란히 전달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 나만의 조리서를 만들고 싶다. 작은 노력이지만 이 조리서 하나가 전통 장을 발전·계승시키는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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