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연의 음악노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내가 유학을 했던 프랑스는 전체 학기가 6월에 끝난다. 한 해의 마무리가 6~7월, 시작이 9~10월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몇 년간, 6월은 많이 지쳤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후 다가올 긴 여름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달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보니, 지금이 가장 활기차고 열정이 넘치는 시기다. 이맘때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니, 뭘 했다고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나갔지?" 역시나 다들 이제야 올 해의 적응을 끝내고 한창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삶을 살아가는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열정적인 달에 어울리게 길가에는 붉은 장미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우리는 붉은 장미를 보면 자연스레 정열과 사랑을 떠올린다. 그러나 다른 색의 장미를 보면 쉽사리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지는 못한다. 장미는 굉장히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고, 색에 따라 그 꽃말도 다양하다. 흰 장미는 순결, 노란 장미는 우정, 파란 장미는 기적을 말한다. 그 중 6월의 탄생화 장미 중 주황 장미의 꽃말을 소개한다. 바로 "당신을 원해요"다. 이 직설적인 주황 장미의 꽃말은 당연 에릭 사티(Erik Sati, 1866-1925)의 곡 'Je te veux(당신을 원해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에릭 사티를 잘 알진 못해도 '짐노페디(Gymnopedie)'라는 곡은 알 것이다. 영화음악이나, 유명 침대 광고음악으로 등장하며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곡이다. 짐노페티를 들어보면 이 곡이 과연 드뷔쉬와 같은 시대인 19세기 말 인상주의 곡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곡은 대게 뉴에이지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 될 정도로 앞서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에는 아웃사이더로 불리던 에릭 사티.

프랑스 작곡가인 그는 파리음악원에 입학했으나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군대에 입대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탈영을 하기 이른다. 이후 몽마르트로 이사가 나이트클럽 피아니스트로 가난한 음악 생활을 하던 그는 평생의 사랑, 수잔 발라동을 만나게 된다.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그녀는 에드가 드가, 로트레크, 르누아르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의 뮤즈로 알려져 있는 동시에,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열정적이고 담대한 그녀는 모델 일을 넘어서 본인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그 시대 남성이 보는 여성의 모습과는 다른, 좀 더 솔직한 여성화를 그리며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사티는 그녀와 단 하룻밤을 보내고 청혼을 하게 된다. 물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발라동은 그 청혼을 받아드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후 6개월간의 불타는 사랑을 했다.

고작 6개월밖에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그 사랑은 사티에게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 되고 만다. 둘이 심하게 다투던 어느 날, 발라동은 사티의 집 창밖으로 뛰어내리게 되고, 다행히 그녀는 찰과상만 입었지만, 그 둘은 그렇게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사티는 집안으로 어떠한 사람도 들이지 않게 되었고 30년 후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을 방문한 친구들에 의해 발라동에게 쓴 편지와, 두 사람이 교환한 초상화 등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그녀를 생각하며 작곡 한 곡 'Je te veux(당신을 원해요)'의 가사 중 일부이다.

'나는 당신의 고뇌를 이해해요, 사랑하는 이여. 그리고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따를 거예요, 나를 당신의 연인으로 삼아주세요. 현명함은 우리에게서 멀고, 슬픔은 깊죠, 나는 소중한 순간을 갈망해요. 우리의 행복한 순간을. 나는 당신을 원해요'

이 곡은 피아노, 성악, 관현악 등 여러 버전으로 편곡 되어있어 다양한 소리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정혜연 플루티스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어느 덧 한 해의 반이 지났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고 세월은 또 어찌나 금방 지나가는지, 흘러가는 시간에 아쉬운 것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삶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고작 백세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연인과, 자녀들과 함께 오롯이 즐기고 사랑을 나눌 시간은 그 백세 중 길어야 50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마저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너무 짧은 인생이다. 개개인의 삶의 목표나 가치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를 단 하나 고르자면 사랑 아닐까.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6월이 가기 전에 주황 장미를 통해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달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에릭 사티의 음악과 함께라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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