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구속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형사재판 선고를 앞둔 의뢰인에게 거짓말을 했다. 조금 미화하자면 나의 희망사항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처음 나에게 사건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변호사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망했다. 사건의 위험성을 가장 좋은 경우부터 가장 좋지 않은 경우까지 망라해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구속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모 방송국 토크쇼에서 승소비법을 묻는 MC의 질문에 "나는 승소할 수 있는 사건만 선임한다"고 농담을 한 영상이 방송된 이래 내가 패소가능성이 높은 사건은 큰 돈을 약속해도 선임하지 않는다거나 선임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장된 이야기였다. 그 발언의 취지는 나는 사건의 패소가능성을 승소가능성에 버금가게 상세히 설명하는 편이고, 패소가능성을 신랄하게 언급한 사건은 승소를 장담하는 다른 변호사에게 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승소가능성이 높은 사건만 남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 역시 구속가능성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하고 선임했다. 그가 반쯤은 농담조로 "네가 선임한 것을 보니 구속 안 되는 거냐"라고 물었다. 정색을 하고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선처받으면 용꿈 꾼 줄 알아라. 내가 너의 용꿈이 되어보마" 그는 나를 선임했으니 그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를 변호인으로 선임한 후 그는 약간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내가 수행했던 많은 재판 결과를 잘 알고 있었고, 축적된 결과에 의해 검증된 변호사로서 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후일 그는 냉정하게 잔인한 현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내가 친구로서는 얄미웠으나 변호사로서는 더 믿음이 갔다고 했다.

변호인에 대한 신뢰만으로는 그를 불안감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지 못했다. 변호사로 선임할 때 들었던 베스트와 워스트가 머릿속에서 교차될 때마다 수시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법적으로 무의미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그런 사실이 선고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 확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줬다.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에 대한 나의 태도는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도다. 그런데 나는 왜 친구에게까지 그렇게 진실에 집착했을까… 변호사로서보다 친구로서 접근할 수 없었을까. 나는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사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모른다고 잡아떼거나, 적극 개입하여야 할 상황이면 선의의 거짓말도 하곤 한다.

나아가 선의의 거짓말을 피할 수 업는 상황이 되면 거짓말한 나조차 사실로 믿을 만큼 그럴듯한 거짓말을 한다. 나에게 거짓말은 일종의 SF영화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아픔을 달래 주는데 판타지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만들어 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 아닌 변호사 업무에 있어서는 거짓말에 관한 나의 태도는 일관성이 있었고 단호했다. "정직은 최선의 방책." 처음 변호사로 개업할 때 선배들이 알려준 변호사의 행동 기준은 오로지 '진실'이었고, 나는 그 행동기준을 충실히 지키는 모범 변호사였다. 이번 사건에서도 정직을 추구하는 업무상 캐릭터에 충실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굴복하여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면 그 상황을 일일이 기억해야 한다. 거짓말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난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변명도 준비해야 할 부담도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별도로 기억해둘 필요도 없고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할 뒷일도 없다. 이래저래 변호사에게 정직은 가장 큰 무기이자 방패다.

마지막 재판을 결심(結審)이라고 한다. 결심 후 선고기일이 지정된다. 선고기일까지 할 일은 단지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림은 사람의 초조함을 자극한다. 친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그의 불안은 점점 심해졌다. 그의 불안은 충혈된 눈동자와 야윈 몸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무언가 처방이 필요했다.

결국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평소라면 '구속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선처를 기대해 본다.' 정도로 전망해야 할 상황에서 '구속가능성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선고기일에 그가 구속되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선고일까지라도 마음 편하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거짓말은 변호사의 권위와 결합하여 그를 완벽하게 속였다. 거짓말은 선고기일까지 그에게 안정제가 되었다. 거짓말로 인해 그가 느낀 평안의 긍정적 가치는 거짓말을 한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나의 거짓말은 정의실현에 가까웠다.

선고일에는 피고인만 법원에 출석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동행했다. 만에 하나 구속되면 바로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선고된 몇몇 사건 피고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모습은 거짓말에 마취된 친구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긴장했다.

선고가 시작되었다. "피고인에게 징역 ○년을 선고한다." 잠시 숨고르는 시간이 흐르고 판사는 선고를 이어갔다. "다만, 이 선고일로부터 ○년 간 집행을 유예한다." 집행유예! 결국 친구는 구속되지 않았다. 법정을 나오면서 내가 그간 거짓말을 했음을 자백했다. "네게 한 거짓말은 내 기도였다고 생각해라."

지금도 변호사로서 일할 때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선임 여부를 고민하는 의뢰인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으로 의뢰인을 위로하지 않는다. 자칫 의뢰인의 변호사 선택권에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처럼 이미 선택이 끝난 의뢰인이 불안에 마음 졸일 때 그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꼭 필요한 거짓말은 종종 하기로 했다. 거짓말에 대한 수정노선을 취한 이후 나의 거짓말은 거짓말처럼 이뤄졌기에 다행히 아직까지 사과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정도면 내게 거짓말을 할 권한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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