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류중현 청주 흥덕고 수석교사

어느덧 10년 전, 2013년 2학년 담임 반 학생들을 상담하던 때의 일이다. 지수(가명)는 학급에서 4~5등 정도의 훌륭한 성적이었고, 특히 수학을 잘했다. 성격이 밝고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도 좋아서 학급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무난히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수를 보면서 항상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지수야 너는 꿈이 뭐니?"

"선생님! 저는 꿈을 잃어버렸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항상 밝게 웃고 있는 지수가 사실은 꿈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다.

"중학교까지는 음대를 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어요. 노래도 작곡할 수 있고요. 그런데 집 형편이 어려워서요. 엄마가 더 이상 지원해 줄 수 없대요. 고등학교 학비도 내야하고, 동생 학원비도 내야 한다고 하세요. 음악은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예고 진학도 포기했어요. 저는 더 이상 꿈이 없어요. 무슨 과를 지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아무데나 가도 괜찮아요."

지수는 사실 피아노 연주를 즐기고 또 소질도 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항상 지수가 대표로 피아노 연주를 하고, 학교 축제가 열리는 날에도 노래를 편곡하여 반주를 하고 댄스 대회를 이끌어서 큰 호응을 얻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한 장의 공문을 받고는 무릎을 탁! 쳤다. SK그룹과 함께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장학생 선발! 나는 바로 지수에게 뛰어갔다.

"지수야 오늘 집에 가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녹음해오렴. 그리고 네가 만든 자작곡 악보 한 곡을 파일에 담고, 그 곡을 연주한 파일도 가져오렴. 우리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에 장학금 신청해 보자"

공문과 지수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나는 마치 내 일인 양 마구 설렜다. 장학금 신청이 성공하면 지수는 꿈을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지수는 내 말을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차근차근 모든 서류를 성의있게 준비하고 제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수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지수는 장학금으로 다시 음악 학원을 다니게 됐고, 서울 SK 본사에 초청받아 개인 연주도 했다. 그렇게 지수를 3학년으로 올려보냈다. 나는 지수의 대학 입시 결과가 궁금했다.

"지수 담임선생님! 지수 대학 어디 합격했어요?"

"선생님! 지수 합격했어요. 연세대학교 작곡 학과에 합격했어요."

류중현 흥덕고 수석교사
류중현 흥덕고 수석교사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지수야 이젠 웃으며 너의 꿈을, 너의 길을 걸어가렴. 나는 오늘도 학생들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지수야, 너는 꿈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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