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백일장이 있는 날이다. 미리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가보니 행사장이 조용하다. 한 분이 백일장 열리는 곳이 이곳 맞느냐 묻는다. 여기서 한 시부터 한다 했더니 열두 시로 알았단다. 관련 안내문을 찾아보니 정말 열두 시로 되어 있다. 실수했나보다. 다들 어디에 모여 있나, 정면에서 조금 벗어나 뒤편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볕이 너무 뜨거워 그리했단다. 참가하는 분들이 당황할 것 같다.

한참을 기다려 시작을 알리는 간단한 모임을 갖고 "고향"이라는 시제가 공개되었다. 원하는 곳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시제에 맞는 글을 완성해 제출하면 된다. 그 후로는 심사위원들이 예리한 눈으로 몇 작품을 추려 정해진 상을 주는 것이다. 비슷한 행사가 여러 곳에서 많이 열린다.

햇살이 너무 강해 교실 한 칸 사용하는 걸 허락받았다. 참가자 몇 분이 교실로 들어간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오래 근무하고 퇴직한 분이 앞문으로 들어간다. 나는 가깝고 편한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자신이 앞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떤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게다.

수십 년 반복했던 습관일 게다. 나는 선생님을 해 본적 없고 앞문은 선생님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뒷문으로 들어간 것이고 그분은 앞문이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앞문을 이용했으리라. 긴 세월 해오던 일에, 몸에 밴 습관들이 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때로는 그런 행동을 보고 직업병이라 놀리며 함께 웃기도 한다.

언젠가는 한 분이 꽤 긴 시간 진행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참여자들을 초등학생 다루듯 했다. 그분의 경력을 들으니 초등학교 교장출신이다.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자신도 모르게 행동한 것이다. 낯선 방식은 자신을 힘들게 할뿐 아니라 보는 이들을 어색하게 만든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그만큼 변화를 주기도 어렵다.

자신의 책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하던 분이 꼭 국어시간 같은 분위기로 모임을 이끌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을 게다. 이쯤해서 "사돈 남 말하고 있네"하는 속담이 생각나 귀가 가렵다. 우리 사회에서 "설교하고 있네, 설교 그만 해" 같은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가끔 기독교관련 방송이 집안에 흐른다. 설교가 많은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면 어조만 들린다. 그때 다가오는 느낌이 말다툼이나 책망을 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더하여 이야기가 끝날 듯 이어지며 길어질 때 듣는 이가 느낄 짜증이 예상된다. 내 자격지심의 발로인지 모른다.

인류를 이만큼 발전시킨 게 습관이라 생각한다. 깊은 사고를 요구하지 않고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는 게 습관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경지에 이른 이를 '달인'이라 하는데 같은 행동을 무수히 반복해 쉽게 해내는 이들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란 어떤 곳일까?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의 영역을 받아들여 주는 곳일 게다. 어떤 일에 최소한의 기능을 갖추었음을 인정한 게 자격증이다. 그들이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들을 적절히 환산해 값을 치르고 구매하는 것이 시장 원리다. 물론 나도 다른 이들에게 내놓을 기능이 있어 적당한 소득이 있어야 살만한 사회가 자본주의다.

이 제도에 잘 적응 못하는 존재가 있다. 넉넉지 못한 채 긴 세월을 살다보면 매번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어렵다. 그때에 어깨너머로 허술하게 기술을 익히고 경제적 유용성을 누린다. 어설픈 기술자, 곧 돌팔이가 되는 게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이 무리에도 못 드는 게 나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도전조차 겁을 내 어설픈 기술자도 못 되니 남에게 신세만 지고 살아간다. 지극히 최소한의 것들만 겨우 익힌 습관으로 내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하다. 나도 여러 사람들 앞에 자연스레 보여줄 게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늘 어설픈 모습만 드러날 뿐이다. 나도 보란 듯이 내세울 수 있는 유능한 기술 하나 익힐 수 없을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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