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은경 청주시 남이면 농업인상담소장

2004년 9월 옥천, 가족들의 웃음소리, 창문 너머 들리는 세찬 빗소리로 어느 때 보다 부산스럽던 저녁 시간이었다. 다급히 짐을 챙기는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어른들은 윗집으로 올라가고, 애들만 태워 애들만!!"

초등학생 즈음이었을까 나는 영문을 모르고 어린 사촌 동생들과 차에 올랐다.

차바퀴에 찰랑거리는 비를 뚫고 옥천을 빠져나왔다. 태풍 루사로 인해 금강 일대가 수해를 입은 해였다. 아주 어렸을 적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잔흔이 남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2017년 농업기술센터에 농촌지도사로 입사를 하자마자 미원, 낭성지역에 수해가 났을 때, 그리고 지속적인 장마와 폭우로 청주 전역에 피해가 막심한 올해에도 복구를 위해 현장에 나갈 때면 항상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7월 오송, 수해복구를 위해 차에서 내리며 농업 관련 일을 하기에 항상 싣고 다니는 장화와 모자, 팔 토시를 든든하게 챙겨 선후배 동료들과 수해 복구 지원 근무를 위해 오송읍 행정복지센터에 모였고, 삼삼오오 흩어져 맡은 오송읍 수해 현장으로 이동을 했다.

수해 현장에 도착해 보니, 주민분들은 아직도 그날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치워야 할 일들을 차분히 알려주셨다. 마음이 앞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싶었으나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과 습한 날씨에 얼굴과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고 진흙으로 인한 냄새 또한 고약했다.

그러나 수해 주민분이 찬물이 없다며 시원한 양파즙이라도 먹고 하라며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물에 잠겨 젖어버린 자녀들의 물감, 상장 등 추억이 서린 물건을 보며 나와 동료들은 집 주인분께 연신 "이것도 버려야 할까요?"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묵묵하게 침수 주택의 복구를 도왔다.

이장님이 봉사지역으로 배정해 주신 집에 할 일을 끝내고는 그다음으로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우리 근처를 서성이시던 옆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다. 이미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일들을 혼자서 감당하시기엔 버거워 보였다.

함께 간 동료들 모두 당연하게 집기류를 옮기고 그 할머니 댁 청소를 시작했다. 한 집의 봉사가 끝나고는 뿌듯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는 그 할머니 댁의 바로 앞으로 치워야 할 짐들이 혼자 치우기엔 산처럼 크게 느껴지실 생각에 바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며칠 뒤 그 할머니의 자녀가 청주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이렇게 글을 남겨주셨다. "봉사자 5분 들이 수해복구해 주시면서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말씀으로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큰 위로를 전해주셨습니다."

전은경 청주시 남이면 농업인상담소장
전은경 청주시 남이면 농업인상담소장

그 자녀분은 "봉사자 5분의 선한 영향력 널리 알리고자" 글을 쓰게 되셨다고 한다. 부족하지만 도움이 되고자 한 작은 마음을 '선한 영향력'이라고 해주신다면, 아마 2004년 수해 때 우리 할머니 집이 받았던 누군가의 도움, 또 다른 봉사자들이 살면서 받았던 선한 영향력이 돌고 도는 것은 아닐까.

흉흉한 일들이 연일 미디어에 오르고 모방 범죄가 연이어 보도되는 요즘,

작지만 따뜻하고 선한 마음들만 돌고 돌아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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