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재의 클래식산책]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일반인에게 클래식 음악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길게는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가사도 없는 음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클래식 공연장이 강요하는 난수표 같은 복잡한 공연 규칙과 질식할 것 같은 경건한 분위기는 클래식 음악을 외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장 어려운 규칙은 박수하는 타이밍을 찾는 것일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는 안내를 받긴 하지만 악장이 끝났는지 곡이 끝났는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각각의 악장(樂章)이 쉼 없이 이어지는 '아타카(Attaca)' 형식으로 연주되는 곡을 만나게 되면 소위 멘붕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악장 간 박수는, 해야 할지 말지를 알기 어렵다고 하여 '모른다 박수'로 불린다. 나아가 곡 전체가 끝난 것처럼 화려하고 찬란하게 마무리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3악장을 듣고 난 후,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박수의 충동을 참는 것은 차라리 고통에 가깝다. 행여, 실수로 박수라도 칠때 쏟아지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수치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악장 간 박수를 금지하는 것은, 음악회를 기독교 예배와 동일시한 19세기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예배 중에는 신(神)만이 찬양받아야 하고, 신은 침묵 속에서 예배자에게 임하기 때문에 예배 중 박수는 신성을 모독하고 신의 임재(臨齋)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간주되었다. 교회 예배 형식을 음악회의 전통으로 확고히 한 사람은 19세기 오페라를 음악과 신화, 드라마와 무대장치가 통합된 '총체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리하르트 바그너이다. 대중적인 일반 오페라에서 공연 중 박수는 권장된 자유였지만, 제의적(祭儀的)인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금지된 행위였다. 이를 공연의 규칙으로 만든 것은, 완벽하게 연주를 통제하고 싶어 하였던 20세기 권위적 성향의 지휘자들이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음악회에서는 음악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지휘자는 음악을 음악의 신에게 봉헌하는 사제가 되었다. 따라서 음악회를 찾는 청중은 음악을 숭배하고 지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수동적인 예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종교화되고 복잡한 의식이 되어 버린 클래식 음악회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의 표현대로 클래식 감상자와 일반인을 분리하는 '구별짓기'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악장 구분이 분명한 경우, 악장 간 박수는 공연과 연주에 그다지 방해되지 않는다. 행진곡과 같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悲愴)> 3악장이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제1악장의 화려한 피아노 독주가 끝난 후에는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가 최근 파리 출장시 '파리 필하모닉 홀(Philharmonie de Paris)'에서 들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연주의 경우, 악장이 끝날 때마다 곡이 끝난 후에나 나오는 수준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연주자나 청중 모두 방해받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정작, 박수가 아닌 침묵이 필요한 시점은 모든 연주가 끝난 후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의 표현을 빌리면 공연장은 관객들이 함께 연주를 즐기는 공개된 '대중의 광장'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없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심연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그 심연에서 솟아나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내밀한 밀실'이다. 공연장에서 우리는 함께 박수를 치면서 감동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지만, 자신만의 감동을 침묵 속에서 홀로 사색하기를 원한다. 특히, 음악이 끝난 후의 침묵까지 생각해서 쓰여진 곡들은 박수에 앞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나 말러의 교향곡 제9번과 같이 느리고 슬픈 '아다지오(Adagio)로 세상과의 고별사와 같이 끝나는 곡들이다. 그래서 베를린필의 상임지휘자였던 아바도(Abbado)는 "청중의 수준은 말러 교향곡 제9번이 끝난 후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박수를 치느냐에 비례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곡의 성격이나 연주자와 지휘자의 움직임에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안다박수'이다. 자신만이 곡이 끝났음을 알고 감동하였음을 과시하는 허세에 가깝다. 음악을 방해하는 소음이자, 예술에 가하는 무자비한 린치이다. 자신만이 항상 옳고 남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꼰대의식'의 일환이다.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유인재 국가철도공단 상임감사·음악평론가

음악은 언어가 끝나고, 침묵이 시작되는 곳에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음악이 침묵 속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순간이다.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고 감상자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음악이 끝난 후 연주자나 지휘자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고, 소리의 잔향이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의 시간까지,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박수를 참아보자. 음악보다 아름답고 진실한 침묵의 소리를, 침묵 속에서 천둥보다 큰 소리로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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