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병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어머님은 94년전에 서산군 태안면 상옥리 흥주사 절 아래에서 팔 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나셨다.

18세에 시집오셔서 59세 때 아버님과 사별하고 6남매를 키우고 출가시킨 어머님 앞에 수많은 시련이 닥쳐왔지만 꿋꿋하게 잘도 이겨내셨다.

어머님은 하실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자식들을 키우시고 돌보셨기에 난 평생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먹고 입는 것이 넉넉치 않던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양보할 줄 아는 심성을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셨다.다.

인생의 쓴맛이란 다 맛보시며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이젠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이셨고 평생 흙만을 지켜오셨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정하시다.

어머님은 늘 쉼 없이 움직이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무슨 일이 그렇게도 많으신지 늘 분주하시다.

씀씀이가 헤프고 매사가 우둔한 나를 보고 아내는 항상 "당신은 왜 그렇게도 어머님을 하나도 닮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처럼 어머님은 흙과 더불어 한결같이 부지런하셨고, 검소하셨으며 세상 모든 욕망을 다 버리시고 고행하며 오직 농사일에만 천직으로 알고 근면 성실하게 살아오셨다.

10년 전에 어머니는 29년간 인삼밭 제초작업 등 온갖 품삯으로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2천만 원씩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올해도 또 생신을 맞아 천만 원씩을 자식들에게 나눠 주셨다. 이렇게 어머님은 평생 근검절약을 인생의 신조로 살아오셨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울해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으시고 굳센 마음으로 역경을 이겨내셨던 어머님이시기에 언제나 존경스럽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한번은 안부 전화를 드리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찾아뵐 때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동태나, 삼겹살을 사가지고 가면 늘 "돈도 없는데 그런 것은 왜 사 오느냐."고 걱정하시면서 반겨 주신다.

어머님에게 죄송했던 것은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핀잔이나 화를 냈던 것이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지난겨울 어머니는 갑작스런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살아계시는 동안 아프시지 말고 살아가셨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등록증을 손수 받으셨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 하더라도 억지로 생명을 연장해 자식들에게 힘들게 하지 말자는 신념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가셔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밟으셨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아직은 건강하시니 서두르지 마시라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건강할 때 받는 것 이라고 하시면서, 보건복지부 지정 국립연명 의료 관리 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등록증을 우편으로 배달 받으셨다.

어머니는 등록증을 받으시고 매우 흡좁해 하셨으며 안심스런 눈치였다.

등록증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여 임종이 가깝다고 느껴질 때,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에 등록된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반드시 의사에게 신고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 참으로 좋은 제도가 될 듯도 했다.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최병부(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어머니 / 이젠 바람이 선선합니다 / 여름내 검게 타신 얼굴 / 차마 뵙기가 안타깝습니다 / 소낙비처럼 흐르는 땀 줄기 / 염소 뿔도 녹인다는 태양의 열기 / 그 험한 고난도 호미로 일구시고 / 숱한 땀 방울이 거름 되어 / 가을의 풍성함으로 돌아왔습니다 / 어머니 / 이젠 흙묻은 그 손을 씻으십시오 / 어머니의 인자하신 그 모습이 / 오늘따라 조용히 떠오릅니다 /

오늘따라 어머님의 허리는 더 굽으셨고, 어깨 또한 더욱더 가냘퍼 보이신다.

살아 계시는 동안 모정(母情)을 기억하며, 항구불변(恒久不變)한 마음으로 어머님을 공경하는 자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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