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여행은 두근거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닫혔던 하늘 길이 3년 만에 열렸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하고 준비하며 가방을 싸는 동안 이미 절반의 기쁨은 채워진다. 너무 많은 짐이 오히려 불편스러워 꼭 필요한 최소의 것으로 가볍게 떠나는 것이 나의 여행 철학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정겨운 눈빛과 열린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살아 온 길이 된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코카서스 산맥 아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개의 나라가 있다. 따듯한 남쪽 땅을 차지하려 수많은 전쟁을 치룬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피 흘린 약소국들이다. 유럽여행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성지순례다. 산꼭대기에 성당이 있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신화가 있는 성지다. 고난의 아픈 상처가 애잔함을 더하는 아르메니아가 마음에 남는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는 뜻의 예치미아진에 갔다. 코드비랍 수도원 저 멀리 아라랏산이 보인다. 40일 밤낮으로 비가 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해발 5,137미터 산 이다. 노아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아르메니아는 로마보다 먼저 세계최초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다. 눈 쌓인 아라랏산을 마주하며 우뚝 서있는 사도교회에, 성 그레고리가 13년 동안 갇혀 있던 감옥이 있다. 바티칸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여 기도하고 갔다는 특별한 곳이다. 남편은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코드비랍 지하 감옥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이런 감옥에서 기도하고 믿음을 지켰다니…. 일제시대 고문 받던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오랜 역사의 옷을 입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아라랏산과 코드비랍 수도원이다. 아직도 그 안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터키, 아르메니아 사이에 걸쳐진 아라랏산은 원래 아르메니아 영토였으나 터키 땅이 되었다. 전쟁으로 150만 명이 학살되고, 80만명이 추방 되어 아르메니아 국경이 막혀 버렸다. 원한과 애통의 땅에 대한 아르메니아인들의 각별한 애정은 못 말린다. 빨강 파랑 노란색 국장, 1천드람 화폐, 은행, 호텔, 레스토랑, 술 이름 어느 곳에서든 아라랏산과 노아의 방주를 볼 수 있다. 터키에서는 너희 땅도 아닌데 왜 아라랏산을 국장에 그려 넣느냐 항의를 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 국기에 초승달과 별이 너희 것이 아니듯, 너희가 빼면 우리도 빼겠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침략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과 같은 격 이여서 분한 마음까지 일맥상통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현재 아르메니아 전체인구가 300만 인데,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800만이 단일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 조국이 위태로울 땐 언제 어디서든 달려가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젊은이의 고백이 감동이었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 또한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 중국 등 흩어져 독립 운동했던 현실과 오버랩 되어 짠한 마음이 든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추억이 그리운 건 그 곳 어딘가에 남겨두고 온 마음이 있어서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그 곳 젊은이들괴 아르메니아에 밝고 희망찬 미래가 있기를 기도한다. 동유럽과 서남아시아 사이 코카스산백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기혼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던 문명의 요람 같은 그 곳에 애잔한 마음을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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