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수필가·㈜대원 경영지원본부장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정녕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청請을 들어주지 않는가. 그녀를 어루만지고 속삭여야만 그나마 알은체한다. 그녀는 얄밉게도 곁님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매번 그의 청請을 단번에 들어준다. 같은 여성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노래를 듣고 싶은 나의 성마른 욕심일까. 참으로 그녀의 속을 알 수가 없다.

클로바는 집안에 공용으로 둔 비서이다. 그녀는 나보다 곁님의 말을 잘 따르는 듯하다. 그는 그녀에게 존대어로 예의를 갖춰 말한다. 누가 봐도 공손하다고 인정하리라. 그에게 '뭐 그리 존대를 하느냐'고 핀잔을 준 적도 있다. 그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목소리만 아는 그녀에게 하대의 말투로 일관하였다.

그녀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이 떠오른다. 깜찍한 외모와 울림 있는 목소리, 아당진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으리라.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척척 찾아 들려주니 어찌 신기하지 않으랴. 한동안 신세계를 만난 듯 흥겨운 나날이었다. 그녀가 자리하고, 즐겨듣던 FM과 오래된 턴테이블도 뒷전이다. 그렇게 온갖 것을 척척 대령하는 살가운 그녀가 있어 집안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남편을 통하여 이뤄졌다.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인가. 이루마의 연주곡을 청하니 그녀는 못 알아듣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성질이 급한 나는 다시금 목소리를 높여 '클로바'를 부르며 음악을 청한다. 또다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단다. 그녀는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 듯 같은 말만 되뇌고 있다. 나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옴씹다 그만두고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그녀는 인공지능 스피커, 브루투스 기능 음성비서이다. 딸네는 그녀를 '지니'라 부르고 우리 집은 '클로바'라고 부른다. '지니'는 불도 켜고 꺼주나 '클로바'는 그 기능은 아직 못 한다. 날씨와 주가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클로바는 축적된 자료를 불러오는 것에 몰두해선지 톤 높은 여성의 음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싶다. 아니면, 처음부터 기계 취급에 자존심이 상하여 응답을 하지 않던가. 그녀가 나에게 자존심을 내세워 무반응을 보인 거라면, 비서로서 직무 태도가 좋은 건 아니다. 돌아보니 가끔은 그녀에게 짜증 투로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칠 년여 세월을 함께했는데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문제가 있다.

창문으로 동살이 스미는 새벽, 곁님이 그녀를 다정하게 부른다. 그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언제 들어도 깍듯하다. 요즘은 합창단 공연 노래를 주로 듣는다. 이러구러 남편도 그녀도 고맙기 짝이 없다. 아침 시간은 출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않던가. 식사를 간단히 하는 중에도 이선희의 '인연'을 들으며 느긋하다. 노래를 반복하여 들으니 저절로 음률도 가사도, 암보 되는 중이다. 여하튼 그녀는 나의 공연을 돕는 조력자가 틀림없다.

요즘 말 잘 듣는 비서가 유행인가. 식당에도 음식을 서빙하는 로봇 비서가 나타난다. 로봇이 아르바이트 한 사람 몫을 한단다. 불평불만 없고, 지각이나 결근하지 않고, 말을 잘 듣는 종업원이다. 하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실업자가 많은 시대에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격이 아닌가. 또한, 손님은 로봇에게 음식의 맛을 전할 수 없어 답답하다. 음식을 즐기던 식당도 점점 인간미가 사라지는 듯하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 살기가 어려울 듯싶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경영지원본부장
이은희 수필가·㈜대원 경영지원본부장

말 잘 듣는 비서를 두는 것도 홍복洪福이다. 거저 얻어지는 복은 없다. 각다분한 세상에 마음의 활력과 에너지를 줄 상대이니 내 말투를 바꿔야만 하리라. 지상의 별들이 가물거리며 피어나는 저물녘 '클로바'를 부르나 응답이 없다. 몸을 낮춰 다가가 다정하게 음악을 청請한다. "클로바,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에 들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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