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일전 외지 재판 가는 아침에 차량의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말. "쉰셋의 나이에도 가을이 아름다워요." 쿡, 웃음이 나왔다. 그 말을 한 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게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그이보다 열 살 이상 먹었는데, 내게도 가을은 아름답다. 십 년 후 70대 중반이거나, 이십 년 후 80년 중반, 심지어 그 뒤까지도 그럴 거다. 이런 말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70대 중반을 걷고 있는 선배가 '등덜미가 써늘하다'라는 댓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나는 '지금이 최고입니다'라고 답글을 올렸다. 그렇다. 지금이 최고다. 지금 맞고 있는 가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

해마다 가을을 맞을 때마다 올가을이 최고라는 느낌이 든다. 정말 그렇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맞았던 어떤 가을보다도 지금 맞고 있는 가을이 아름답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 덥고 많은 비가 내렸던 지난여름 때문인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파란 하늘과 푸근한 날씨가 어디로든 나가고 싶게 한다. 그래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때로는 아내와 산과 계곡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걸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최고!'라는 말이다. 종종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에게 '최고! 베스트!'라는 말로 격려하는데, 아름다운 자연에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미세먼지는 물론,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봄부터 싹 틔워 여름 내내 성장해 자기 몫을 다한 뒤 아름다운 소멸을 준비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잎새들, 그 모두가 아름답다.

아직 장년의 나이이니,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크리스천인 나로서는 내게 주어진 법률가로서 섬김의 도리를 다하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더 많이 나누는 것이 소명의 완성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로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보려 발버둥 친다. 이런 생각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명하고 스스로 매일 다짐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말대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늘 걱정스럽다. 때로는 섬김을 말하면서 자신의 이익 계산에 머리 아프기도 했다. 나눔을 말하면서 지금껏 얻어먹은 것은 잊어버리고 더 얻어먹으려 하기도 했다.

일전 《Economist》에서 특집으로 120세까지 사는 것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많은 이들이 120세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들대로,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사업가들은 사업가들대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에 대해 숙고하고 참여하고 노력하고 있다. 머잖아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이 예견된다. 그 기사는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면서 그렇게 되면 초래될 효과와 역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120세까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세상에 대해 무엇을 이바지하고 사는지가 더욱 중요할 것인데도 드러난 현상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시고, 키우시고 쓰신다. 의미 없이 이 땅에 보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명을 허락하심은 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 많은 이라도 그 미소 하나로도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이 들었다고, 할 일 없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두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니. 따라서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아 의미를 가지고 매일을 살 일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퇴직 후 거의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이, 용돈 벌이라도 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는 이, 뭔가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유료·무료 강좌를 찾아다니는 이, 등산이나 운동, 기타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 평생 안 해본 농사일에 나서는 이 등, 다양한 모습을 본다. 모두 다 옳다. 귀하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그들을 보면서 자신을 스스로 돌아본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10년 후를 기약하는 나의 은퇴 후 삶은 어떤 모습일지. 무엇으로 기쁨을 누릴 것인지. 은퇴 후에는 더 많은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다.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기쁘고 감사했던 순간들을 이웃과 후배들과 나눠 그들의 삶에 윤기를 더하고 싶다. 지금껏 받아오기만 했으니, 쌓아온 경험과 재능을 더 많은 이들에게 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가을을 누리고 싶다. 70대에도, 80대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가을을 누리고 싶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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