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노예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선사시대부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에 따라 온전히 타의에 의해 약자가 강자의 소유물이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으로 고대 오리엔트·그리스·로마와 식민지 시대의 아메리카 등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인간으로서 권리와 자유도 없이 소유주(主人)의 지배하에 강제로 무상노동을 하였고, 상품으로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되던 시대의 피지배 계급이었으며, 한번 노예가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를 이어서 노예로 살아야 했으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의 한 토막이었다.

중국이나 한국의 옛 노비(奴婢)도 이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유럽의 노예와는 달리 결혼이 가능했고, 어느 정도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 신분 상승의 출구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제도는 근세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문명의 칼바람에 밀려 노예해방과 노비 속량 등으로 인권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노예나 노비의 주인은 재력과 권력의 힘 있는 사람으로 제한적이었으나, 현대판의 주인은 자의적으로 관계 짓는 고용계약의 대상에 따라 고용주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쌍방 계약으로 성립되는 노사관계에서 돈과 시간의 노예, 일과 직업의 노예, 정치와 권력의 노예, 사상과 이념의 노예, 학문과 종교의 노예 등처럼 사람을 부리는 주체를 바로 그 주인(使役者)으로 여기며, 부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그들의 일꾼(勞役者)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관계의 신분은 부림을 받는 이의 의지에 따라 일시적일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인을 바꿀 수도 있으므로 종래와 같은 주종의 예속관계와는 성격이 전연 다르다.

자의적 결정에 따라 생계 수단의 일자리(職業)를 얻기 위한 노사 간의 계약조건으로 시간의 노예가 된 당신은 한 주에 4~5일의 인생을 팔아 2~3일의 자유를 사는 잘못된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運命)에 놓이게 되지만, 당신이 무한 책임을 지게 되는 그 거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 비합리적인 방법을 바꿀 수 있을까?

계약에 따라 하루에 8시간씩 열심히 일하다 보면 당신도 언젠가는 그 일터의 주인이 되어 하루 12시간 이상씩을 일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종래에는 일꾼들을 목표 달성을 위해 폭력을 가해서라도 잘 부리기만 하면 되었으나, 오늘의 주인은 그들과 같이 활동해야 하므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일을 찾아서 이윤 창출을 위해 진력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오늘의 주인은 일꾼들을 창의적으로 이끌면서 함께하지 않으면 무사안일이나 복무규정에 명시된 일만 하다가 책임 전가에 빠지기 쉽다. 일터의 구성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기란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직장인을 그 일터의 일꾼으로 보는 건 모든 구성원을 노역자로 보는 시각과 같다. 교원노조나 공무원 노조와 직장노조가 다 그런 거 아닌가? 박봉에 목숨을 담보로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며 사지에서 일하는 이들이 다를 바 없다. 이윤 창출도 좋지만 최소한의 안전한 근무 여건은 보장해야 한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예처럼 부리는 일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원양어선의 선원으로 선수금을 받고 기약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일하는 이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로 들어와 집단농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이들도 노예란 말은 사용하지 않아도 이와 다름 아니리라.

19~20c에 우리의 조상들이 미주와 독일과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었던 걸 생각해서 내 인권이 소중한 만큼 내가 부리는 이들의 기본권이라도 보장해 준다는 생각에서 이제 노예 의식은 싹 씻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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