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통방송에서 격주로 라디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사회복지적 관계나 우리 주변의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떻게 회차를 채우나 싶었는데 벌써 8회를 넘어가면서 출연 기간이 연장되었다. 아직 못다한 말이 더 많아서 일거다. 그동안 빈곤과 가족, 한부모 가족의 문제, 폭력과 가족, 다문화가족, 1인가구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고 이번 주는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한다.

글이 소개될 때쯤에 이미 방송이 나간 이후일 것이나 독자가 다를 테니 개의치 않고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며칠 전 지역아동센터 충북지원단에서 실시하는 '느린학습자 성과공유회'에 다녀왔다. 느린학습자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시계가 있는 법이니 느린학습자는 말 그대로 학습이 느린 아이를 뜻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4년째 진행된 느린학습자 지원은 우리가 흔히 경계선 지능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대상이다. 즉, 좁은 의미에서 IQ 70~84 정도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데 넓은 의미에서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학습의 어려움을 보이는 사람들로 칭한다.

느린학습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새로운 사각지대로 부상하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소수의 관심일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느린학습자가 생각보다 많다.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부모가족시설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엄마가 경계선 지능이어서 아이들에 적정한 자극을 주지 못하고 가정 안에서 훈육이 이루어지지 못해 이 아이를 사무국 사회복지사들이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과욋 일이다.

아동학대를 판정하는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본 단어도 '경계선 지능'이다. 심리적, 정서적 오류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아동학대 판정 전 관련 검사를 진행해보면 인지 기능이 낮은 부모로부터 학대가 이루어지거나(아동학대인 줄 모르고), 아이의 인지적 장애를 수용하지 못해서 발생 되는 학대행위가 많다. 아이에게만 있는 느린 시간을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느린학습자 지원 사업은 2025년 이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 주길 바란다. 2024년까지 공동모금회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지만 시범사업은 대체로 5년 이면 종결된다. 종결 이후 사업을 지속하는가는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올해 안 그래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세수 감소로 인해 예산 삭감, 절감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동 돌봄 등 아동 지원에 대해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매우 신중한 자세로 예산을 편성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날 성과공유회에서 느린학습자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기 위해 영상을 만들고 상영하면서 인식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가 가장 자신의 문제를 잘 아는 것이니 어쩌면 엄마들의 활동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아이가 느린학습자임을 밝히고 사회적 지원을 바란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상황이 다 다른데 똑같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 등록도 안되다보니 관련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없고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담이 뒤따른다. 그러자고 장애인 등록을 하자니 애매한 기준에 상처만 받기 일쑤여서 부모들은 등록을 꺼리기도 한다. 느린학습자에 대한 우리 편견은 학습부진아, 답답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사회성 부족한 아이 등으로 낙인이 따른다. 인간행동 이론에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오랫동안 빈곤이나 질병, 영양실조처럼 결핍 상태에 의해 발달이 손상된다 하더라도 그 후에 환경이 개선되면 아동발달은 최적 상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소성(plasticity)의 원리가 적용된다.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야기의 요지는 느린학습자 지원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지난 4월 경계선지능인지원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얻기를 바라고 더이상 느린 아이들을 사회적 알람에 맞추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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