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커피는 물의 온도가 향과 맛을 좌우한단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를 주문할 때 으레 얼음 세 알을 챙긴다. 약간 뜨거운 기운을 가신 온도를 즐긴다. 그렇다고 물의 온도가 미지근하거나 식은 상태를 원하는 건 아니다. 얼음 세 알을 넣어 쏟아질 듯한 커피를 내주는 점원은, 손님의 다양한 요구에 귀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를 만드는 걸 지켜보니 아이스아메리카노 제조가 쉬울 듯싶다. 어쩌면, 사이렌 여신을 내걸고 커피를 파는 S 매장에선 한국 사람을 제일 좋아하리라. 내 주위에는 얼음 조각이 가득한 커피,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님이 많아서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한겨울 추위에 떨면서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찾는 분이 많다. 온몸을 털옷으로 싸매고 찬 음료를 마시는 분을 보면 속이 얼마나 추울까 다시금 쳐다보게 된다. 얼마 전 프랑스 AFP통신은 한국인들의 아이스아메리카노 사랑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여 시선을 끌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뜻하는 '얼죽아(Eoljuka)'을 설명하며, '겨울에도 따뜻한 음료보다 더 많이 팔린다.'라는 외신이다. 더불어 한국인이 얼마나 커피를 좋아하는지도 알린다. '일 년에 평균 커피 353잔을 마시고, 이는 세계 평균의 2배를 넘는다.'라고 덧붙인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도 놀랍지만, '얼죽아'를 좋아하는 분석에도 놀란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기인한 것이란다.

여하튼 한국인은 빠름의 미학을 전 세계에 펼친 선두 주자이다. 나의 성격과 행동도 빠르기 등위를 매긴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밥을 빨리 먹는 버릇은 오랜 직장생활에서 굳어진 식습관이다. 상사를 모시고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분의 성향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직장인은 외부에서 지인을 만나 점심을 먹고 차 마시기엔 시간이 벅차다. 그래서 뜨거운 음료를 빨리 마시고자 얼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빠름의 근성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요인도 있단다. 모내기와 벼 베기 등 절기에 해야 할 일을 제때 마치지 않으면 열매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절기마다 늑장을 부릴 수 없으니 '빨리빨리'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은 맵고 짠 음식들이 많은 탓에 그 열기를 식히고자 냉커피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여론도 있다. 얼음 세 알을 챙기는 나의 오랜 커피 습관도, '빨리빨리' 근성도 직장을 그만두면 바뀔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다른 하나는, 단체 성향의 하나로 '응집력 넘치는 한국인의 근성'을 추가하고 싶다. 이런 근성은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다. 장점은 둘째치고, 단점으로 외국인의 시선에 한국인은 개성 없는 민족으로 보일 수도 있다. 수년 전 다수의 한국인이 등산복 차림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을 관람하는 걸 유럽인이 지적한 바 있다. 전통을 위시하며 품격을 따지는 외국인의 시선에는 곱지는 않았으리라. 등산복이 아무리 편안하더라도 직장 출근복 차림은 아닌듯싶다. 요즘 학생들의 옷차림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결같이 검정 패딩을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십 대의 아리따운 청춘들이 자기만의 표현을 못 하는 것 같아 아쉽다.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생각은 몸짓으로 나타난다.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몸짓과 언어 표현이 돌았으면 한다. 한국인이 여러 나라에 '얼죽아'로 굳어지는 모습은 보기 좋은 건 아니다. 한국의 직장 문화에 '빨리빨리'가 필수적이라는 표현도 별로이다. 남의 시선을 쫓기보단 남다른 개성의 표현을 보고 듣고 싶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조금만 기울이면, 나의 모습도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일상에 창의적 생각도 돌고, 정신적 풍요도 있지 않으랴. 오늘도 나만의 향기로운 음료, 찰랑거리는 커피에 투명한 '얼음 세 알'을 주문한다.

키워드

#아침뜨락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