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새해를 맞았지만, 감각이 별로 없다. 예전 같으면 각오도 새롭게 하고 거창한 계획도 세우고, 책도 한두 권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덤덤하다.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뒤, 잠도 못 자고 비몽사몽 간에 지내다 보니 아무것도 못 한 채 첫날 오전이 지났다. 아점으로 커피와 함께 빵과 고구마 등으로 때웠다. 후배 가족과 함께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돈 뒤, 영화 한 편을 봤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여느 때처럼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 묵상 시간, 새해 첫날을 의미 없이 보낸 것 같아 개운치 않다. 한편에서는 과히 나쁜 시작이라고 탓할 건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렇다. 인생이 뭔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 인생 아닌가. 하루, 한 주, 한 달, 분기, 계절, 한해 등 시간의 경계가 있는 게 좋다. 그 경계에서, 간단히라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특별히 달라지지 않아도 좋다. 생각을 달리 해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고마운 분들에게 메시지 몇 개, 전화 몇 통 해본다. 생각하지 못한 이들로부터 메시지를 받거나 전화를 받기도 한다. 고맙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죽음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지만 바로 시간의 경계 아닐까. 돌아보고 다짐할 수 있다. 비록 다짐한 대로 다 하지는 못해도 의미 있다. 그래서 나도 사소한 다짐을 해본다.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일터와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할까.

우선 몸을 잘 돌보겠다. 그동안 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 못 했다. 그런데 주위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만나면 거의 건강 얘기다. 누가 무슨 병으로 아프다는 게 주류다. 나도 이제는 몸에 신경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근력운동도 하고, 주말 등산, 걸어서 출근하기도 좀 더 회수를 늘리겠다. 과식과 야식을 피하고, 밥도 천천히 먹어서 몸을 보호해야겠다. 지난 연말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니, 약도 먹고, 음식도 조절해야겠다.

디지털 금식과 적절한 독서를 다짐한다. 오랫동안 종일 휴대전화에 매몰되어 살았다. 이제는 벗어나겠다. 겉멋의 독서를 지양하고, 실질적으로 삶의 깊이와 높이와 거리를 늘려줄 수 있는 책들을 균형 있게 읽겠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 영어는 해오던 대로, 일어는 가벼운 책이라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겠다. 원어 성경을 읽고 싶어 3년 전 시작했다가 포기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다시 시작하겠다. 적어도 사전을 찾을 수 있는 정도로는 하겠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공연장을 자주 찾겠다. 작년 라이온스 덕분에 오랜만에 보스턴의 추억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결혼 40주년 기념 스페인 여행은 아내의 교회 일정 때문에 미뤘다. 올여름 휴가 때 다녀오겠다. 가끔 일본이나 중국 등 청주에서 출발하는 가벼운 주변국 여행을 하겠다. 그 시작이 지난 연말 이틀간의 동경여행이다. 게으름 그래서 못 했던 클래식 연주장을 적어도 10회 이상은 찾겠다.

더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장년의 품격을 지키겠다. 특히 언어에 신중하겠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다. 다른 이들을 이름만 부르지 말자. 친구 사이에서도 직책을 넣어서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누구누구 '님'이라고 일부러 붙여서 언급해서 스스로 훈련을 쌓겠다.

아내를 존중하고 자녀들, 특히 손자녀들에게 본을 보일 것. 친구들과 이웃들을 배려할 것. 그들 덕분에 내가 잘살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보일 것. 일터에서 제대로 섬길 것. 내 존재 이유는, 내 경험과 지식으로 다른 이들을 하나님 같이 섬기기 위함이다. 타인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자. 어느 자리에서 건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말 것. 무슨 모임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잔소리하지 않을 것.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이렇게 일상을 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보완할 것을 다짐한다. 거창한 목표나 꿈은 없다. 주어진 일상에서 온전히 섬기고 나누면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새해가 좋다. 이순(耳順)에서 종심(從心)의 향해 나아가는 시절이니, 중심을 확실히 하고 싶다. 세상에 유익을 끼치고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진정한 에너자이저(energizer)로 살고 싶다. 사소한 것부터 갱신(更新)하기를 다짐하는 지금은 한해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새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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