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재능 없음을 알지만 긴 세월 학교 다니고 책 읽고 신문도 보며 무식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분명히 아는 것 없고 아른아른 하던 것도 희미해져 갑니다. 서글픔과 체념이 몰려옵니다. 한편으로 그런 것 모른다 한들 내 삶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내 무식한 얘기 해보려 합니다. 며칠 전 그러니까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멀쩡하게 아침밥 먹고 두세 시간 지나 배가 쌀쌀 아파오더니 갑자기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밀려옵니다. 침실로 들어가 베개를 안고 간신히 참아냅니다. 갈비뼈 안쪽과 명치가 만나는 부분이 딱딱하고 무척 아픕니다. 어쩔 줄 모르고 소화제만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스르르 잠이 들고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점심때가 돼도 무언가 먹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저녁에는 조심스러워 차라리 배고픔을 견디기로 했습니다. 화요일은 가족들과 외출을 계획해 힘이 없지만 따라 나섭니다. 배가 고프니 조심스레 이것저것 먹었습니다. 겨우겨우 버티며 살았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하고 몸도 정상이랄 수 없었습니다.

어제는 월요일 고통을 잊고 아침상을 대했습니다. 다시 두세 시간이 지나 같은 증상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통증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견딜 수 없게 아파옵니다. 여전히 갈비뼈와 명치 사이가 딱딱하고 두드리니 견디기 어려울 만큼 아픕니다. 겁이 덜컥 납니다.

내 나이 육십 중반, 아버지 하늘가신 때와 비슷하고 자녀들 삼십 넘은데다 내 하고 싶은 일 그런대로 해보았으니 크게 억울하거나 서운하지 않습니다. 더 산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할 것도 아닙니다. 누군들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내 나름으로 정리하는 동안 전번처럼 또 스르르 잠이 들고 통증이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잘못돼 있고 중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며칠 간격으로 아픔이 오니 예삿일 아님이 분명합니다. 혹시 내 몸 깊은 곳에 나쁜 병균 녀석들이 농간을 부리는지 모릅니다.

별 것 없던 일상을 돌아봅니다. 월요일과 오늘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봅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버섯이 떠오릅니다. 늘 버섯을 대하면 한두 개 먹고 말았는데 고통을 겪은 이틀 아침에는 왠지 먹을 걸 버린다는 생각에 다 먹었습니다. 잘 먹지 않던 걸 많이 먹으니 내 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제대로 처리 못해 문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몸이라고 처음부터 모든 걸 알 수야 없겠지요. 그래서 아기들에게 금하는 음식이 있고 서서히 어른들 먹는 음식에까지 이르는 적응기를 거칩니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 오래 살아 바다생선을 먹어 본적이 드물어 생선회를 잘 먹지 못합니다. 꽤 오래전 어느 좋은 자리에서 생선회를 먹고 며칠 무척 고생했습니다. 남들도 그런 줄 알고 물어보니 다들 괜찮았답니다.

이제 버섯이 조심할 먹거리 목록에 올라갑니다. 언제 어떤 것들이 또 더해질지 모릅니다. 익숙지 않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럼 최근에야 겨우 용기 내어 새로운 것들을 조심스레 해 보겠다 한 결심을 어쩌나 걱정입니다. 그동안 너무 좁은 세상을 살아온 것 같아 울타리를 넓혀 보려 했는데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조금씩 접근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문제는 정말 버섯이 통증의 원인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식재료 하나를 애매하게 잃는 셈입니다. 빈약한 근거로 부정확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내 문제조차 이렇다면 무엇을 확실히 안다 할 수 있을까요? 알고 있다는 것들도 한두 꺼풀 벗겨 놓으면 아는 게 아니었다는, 모른다는 실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타가 내 전문분야라고 인정하는 성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치만 더 파고들면 안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한 치까지 갈 것도 없이 겉도 다 안다고 못합니다. 내세 문제를 경험해 보았나요? 아니, 아닙니다. 확실히 아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확실히 안다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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