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내 친구 B.

그는 철인(鐵人, iron man)이다.

B는 수영 3.8㎞, 사이클 180㎞, 달리기 42.195㎞를 한 번에 완주하는 철인3종 경기를 일 년에 몇 번씩 한다.

틈틈이 마라톤 완주, 100㎞ 울트라 마라톤 같은 하드코어 달리기를 곁들인다.

최근 그는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그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에게 "함께 달리자"고만 하지 않는다면 그는 나의 최고의 친구일 것이다.

내가 B를 처음 만난 것은 새내기로 대학을 입학한 해 어느 봄날이었다.

상경해 교정을 외롭게 헤매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B를 만났다.

B가 반가이 나를 반겨줬는데,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짐짓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B가 참 귀여워 보였다.

서울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던 터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쉽게 친해졌다.

경영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와 달리 B는 매사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녀석이었다.

학과 공부는 물론이고 동아리에서의 운동도 꽤나 열심히 했다.

매사에 진심을 다하는 B가 나에게는 큰 자극이 됐다.

운동 후 각자의 전공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B의 전공인 법학이 내 적성에 맞을 것 같았다.

전공에 흥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대학생활 1년이 지나갈 무렵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B는 나의 자퇴에 영향을 주었다.

순식간에 자퇴를 결심한 터라 B를 포함한 대학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편지 한 장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지난 1년 동안의 허송세월에 대한 죗값을 치르듯 1년을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운도 따라 원했던 학교 법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택인아!" 입학식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B였다. 내가 자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B 역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역시 고향으로 내려가 입시를 준비해서 우리 학교 법학과에 다시 입학했다고 한다.

뜻밖의 시간 뜻밖의 장소에서 B와 재회했다.

개강해보니 B와 나는 한반이 돼 있었다.

B의 학번도 바로 내 뒷번호였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B는 나와 3월 2일로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묘한 인연이었다.

중년이 된 지금도 매년 3월 2일이 0시가 되자마자 서로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생일이 같으면 비슷한 인생을 사는 것인지 그와 나는 비슷한 인생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적어도 입대영장을 받기까지는 그랬다.

당시에는 대학교를 2년 늦게 들어가면 한 학기를 마치고 바로 입대해야 했다.

나는 한 학기를 마치고 군입대 영장을 받았다.

B 역시 같은 운명이라 여겼으나 B는 나보다 생년이 정확히 1년 늦다고 했다.

B는 생일이 3월2일이었지만 1년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B는 공식적으로 재수 나이에 해당해 졸업때까지 입대를 미룰 수 있었다.

재회 1년이 못되어 나만 홀로 입대했다.

그때부터 B와 내 운명이 조금 갈렸다.

전역 후 복학하니 B는 내가 없는 동안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해서 2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복학했다고 나와 놀아줬기 때문이었을까?

B는 안타깝게도 2차 시험에 떨어졌다.

그 후 B는 내가 자취하고 있던 판자촌 옥탑방으로 찾아와 오랫동안 함께 살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봄날.

B는 사법시험 1차 합격통보를 받았고,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동안 공부했던 고시서적을 모두 태웠다.

정든 책이 재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연기가 그의 합격기원의 향이 되길 바랬다.

나는 법조인의 꿈을 접었지만 B는 꼭 합격해서 꿈을 이루길 빌었다.

그해 어느 날 2차 시험을 보던 B가 새벽에 나를 불쑥 찾아왔다.

그는 많이 지쳐있었다.

B는 더 이상 시험을 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를 설득해서 억지로 시험장에 들여보냈다.

그해 B는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격으로 합격했고 나는 회사에 취업했다.

B는 나에게 회사원은 폼이 생명이라면서 내가 평생 가져보지 못한 값비싼 명함지갑과 만년필을 선물해 주었다.

생활이 넉넉지 못한 B에게 꽤 큰돈이었을 터였다.

나는 그 명함지갑과 만년필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각자 회사원과 법조인으로 살면서도 우린 계속 함께 했다.

법조인이 돼 조금은 넉넉해진 B의 배려가 그런 관계를 가능케 했다.

B는 매년 각지의 콘도를 빌려 나를 초대했고, 그것이 당시 나의 유일한 여행이 됐다.

B가 근무하는 곳 근처에서 일이 있어 방문하면 B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일부러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밥을 사기도 했다.

결국 B는 판사가 됐다.

인연은 인연인 것이 B는 나의 고향으로 발령받았다.

나는 고향에 올 때마다 B를 만났고 그 때마다 B는 나의 꿈을 자극했다.

B로 인해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덕분에 나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결국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날 누구보다도 먼저 B에게 사실을 알렸다.

B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B는 판사로서 우수했다.

재판 진행이 깔끔하고 결론이 공정해 매년 변호사들이 뽑는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곤 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법원에 출입하는 공무원들을 모두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판사가 그렇게 한 적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가 자랑스러웠다.

지금도 B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철인3종경기로 단련된 신체에 담긴 건전한 정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B의 맛깔나는 입담이 가미돼 항상 흥미롭다.

최근에는 공대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의 지혜는 이제 법의 영역을 넘어 최신 공학까지 이르고 있어 그의 인생의 깊이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B는 별다른 욕심이 없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판사로서 끊임없이 사건을 다루며 정의를 찾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철인(鐵人, ironman)의 몸에 철인(哲人, philosopher)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B.

B가 그 바램대로 법원에 계속 남아 세상의 정의를 끝까지 지켜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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