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핸드폰을 열어보니 아침부터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와 있다. 전화한 이들 면면을 보면 대충 용건을 짐작할 수 있다. 뭔가 잘못 된 느낌이다.

늦추어진 화상독서토론이 오늘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당황스런 경험을 시킨 셈이다.

오늘 토론 도서가 내 책 변두리 인생길이고 자연스레 내가 사회를 보아야 했다.

며칠 전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만 깜박했다. 전화로 구구히 변명을 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씩 가져와 서로 나눠 갖자 했는데 나와 다른 한 분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자기합리화도 진화한다.

'뭐, 그리 대단할 게 있나, 조금 늦게 하면 되는 걸….' 결정적으로 잘못될 일이 무언가. 다 괜찮다. 조금 민망하면 된다.

현대인의 비서는 스마트폰인가 보다.

남들은 일정관리를 사용해 실수가 없는 것 같은데, 기계에 어눌한 나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딱하다는 듯 설명해주지만 만만치 않다.

남들은 쉽다는 데 왜 내게는 그토록 어려울까?

매사에 몇 걸음씩 늦으니 이제 수첩을 가지고 다녀야 할까보다. 남들에게 칠칠맞은 인상을 주기보다 조금 불편한 것이 낫겠다.

내심 세심한 성격이라 생각했다.

하는 일이 많지 않으니 실수도 적고 나름 괜찮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 여겼는데 최근 여기저기서 내 소신에 금가는 소리가 들린다.

안다고 여겼던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방송을 보다가 유명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더니 며칠 지나 문득 떠오른 적도 있다.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는가 보다.

기억한다는 게 때로는 고통일 수 있지만 망각이 원망스런 순간도 많다.

너무도 익숙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걸 확인하는 때가 있다.

그런 장면에선 아득하다.

살아있는 존재들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장면이 내게도 다가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지점들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이름난 곳을 다녀온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에는 나와 무관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나라고 못 갈 곳인가?' 교통 편리하고 길 안내야 통신기기가 잘 해주니 한 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욕심이 생긴 게다. 다른 이들 화제에 휩쓸려 비슷하게 살아보려는 허망한 바람이 내 안에 든 게다.

남들이 세월을 저당 잡히며 치열하게 살아낸 동안 난 무엇을 했던가? 압박과 규제가 없었으니 한가한 삶을 살아 열매 없는 가을을 맞이한 게다.

붉고 누렇게 익은 열매들을 보다가 돌연 내 자신을 돌아보니 내놓을 수확물이 없음을 알게 된 셈이다.

느지막이 또래들은 마무리 짓고 쉬려는 때에 엉거주춤 새로이 뭔가를 시도해보려니 상황이 녹록하지 못한 것이다.

만사에 때가 있다지만 나는 이 시대는 정해진 때가 없다고 생각한다.

꽃피고 새우는 것도 정해진 게 아니고 과일과 채소도 제철에만 나오지는 않는다.

밤에도 불이 환하고 24시간 일하는 곳이 많다.

은행 업무시간이 지나도 24시코너가 있어 웬만한 일은 처리할 수 있다.

만사 정해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용기 내 시작하면 그게 적기다.

늘 남보다 한두 걸음 느리지만 걱정할 바는 아니다.

어쩌다 산을 오르다 보면 내려오는 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한두 시간 차이가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안가 다 그 산을 다녀온 게고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다.

자연의 사 계절은 나름의 의미와 풍취가 있다.

어느 일을 하든지 청년 중년 장년 노년에 독특한 느낌이 있고 그 우열을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우리 삶을 하루도 생략할 수 없기에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선택지 앞에서 남들 하는 것이 아닌 내 생각과 판단을 따라 조금은 다르게 내 길을 가보고 싶은 것이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모두가 같은 길이 아니니 누구에게도 똑같은 해결책이 없어 스스로 정리하고 메모하며 선택한 길을 가는 게 아닐까?

내가 고른 길로 혼자 간들 어떤가, 심심할 각오가 되어 있으면 호젓한 길이 되리라. 그때그때 수첩에 적어가며 천천히 내 길을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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