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하루 중 내 손에서 가장 오래 있는 연필은 쥐고만 있어도 느낌으로 평온하다. 단단한 나무의 질감이 좋고 둥글지만 만지면 여섯 개 각이 손끝을 안전하게 지탱해 준다. 작품의 글이 풀리지 않는다거나 또는 심심할 때 연필을 잡으면 암전되었던 생각에서 빛이 보인다. 내게 영감을 주는 연필 끝은 육각형 벌집 모양이다. 봉긋하게 올라온 부분은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지붕, 몽골 게르가 보인다.

여행자들의 편리에 맞춘 게르라고 했지만 여름인데도 밤은 무척 추웠다.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며 열어놓은 문 사이로 쏟아지던 별 무리를 감상했다. 망원경으로 보면 북극성의 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고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 크기를 확인하지 못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일 거라 기대했던 아쉬움을 풀숲을 밟으며 삭이는데 게르가 몽당연필처럼 보였다. 살짝 솟은 지붕이며 둥근 모양이 자연이 깎아 놓은 작은 연필 같다고 생각했다.

틱낫한 말씀 중에서 종이를 인용해 보면 종이 안에는 구름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구름은 비를 내리고,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종이가 된다. 종이가 존재하기 위해서 구름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는 공존한다. 나는 그 중 인연으로 닿은 티끌 같은 한 장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쓴다. 연필 글씨는 부드럽고 정겹다. 좋은 냄새도 난다. 자연과도 닮았다. 펜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굵기로 쓰지만, 연필은 금방 깎아 쓴 글씨와, 무디어진 심의 글씨 굵기 차이가 있어 새롭다. 많이 사용할수록 작아지는 크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연필을 즐겨 쓰는 재미 중 하나다.

오래전에 청주 문인협회에서'문인 자필 시화전'을 했다. 인쇄된 원고지에 본인이 직접 글을 써서 전시회를 했는데,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스스로 악필이라고 생각하여 쓰는 부담과 그림이 없으면 차별성이 없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의 시화전은 그림의 인위적인 것이 배제되어 담백하고 문인의 자필 글씨를 볼 수 있어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다른 방법으로 시화전은 계속되고 참여할 때마다 생기는 시화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고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은 내 글씨로 쓴 작품이다. 한 칸 한 칸 온 마음으로 채워가던 심호흡,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긴장감, 한 장 종이의 가치를 깨닫던 소중한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빛난다.

그때 썼던 연필도 지금의 것과 같은 종류의 연필이다. 잘 써지고 진하며 연필심이 종이에 닿았을 때 미끄러지듯 가볍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글씨도 예쁘게 써진다. 주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글을 써야 하는 내 직업과 흘림체 글씨도 멋스럽게 보이는 연필 글씨는 나와 잘 맞는다. 가끔 아이들이 연필을 탐할 때가 있다. 디자인과 색상은 예쁘지만 흐리게 써지는 학생용 연필보다 진하게 써져서 부러운 듯하다. 한 번만 써보겠다며 가져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돌아올 때는 뭉툭해져 있다. 꾹꾹 눌러썼으리라 짐작한다. 연필 글씨는 손의 힘 조절과 순간의 집중력이 글씨체로 드러난다.

조상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 마른 무논에 물들어가는 소리, 아기가 엄마 젖 먹는 소리, 그리고 하나는 책 읽는 소리라고 했다. 나는 글씨 쓸 때 듣는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한 글자 쓸 때는 소리가 없지만, 집중하는 고요함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소리가 모이면 사각사각 소리가 된다. 오롯이 종이에 담아내는 자연과 만남의 소리다. 글씨 쓰는 소리의 이끌림은 황홀하고 숙연해진다. 아름답다. 연필 글씨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고유한 소리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겨울방학 수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를 하는데 연필 한 자루가 떨어져 있다. 내 손안으로 쏙 들어오는 주황색 작은 연필인데 깨끗하다. 소중하게 사용한 마음이 보여서 주인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돌려줄 방법이 없다. 내 필통에 넣었다. 새 학기가 되면 주운 연필은 또 다른 아이 손으로 인연이 닿을 것이다. 연필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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