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윤한영 한서대학교 항공융합학부 교수

새해가 되어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 왠지 식상하다.

반복되는 연례행사 같아 형식적이고 무엇보다 내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해야 할 일과 하던 일은 해가 바뀌어도 있다.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결심을 하기 보다 하던 일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 볼 작정이다.

지금 내 눈에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겉모습만 보고 가볍게 진실이라 해서는 곤란하다.

관점의 폭과 넓이를 확장해야 실수를 줄이고 새롭게 볼 수 있다. 미래 교육의 화두인 창의, 융합적 사고도 새로운 지식과 다양한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같은 맥락이다,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 개항 당시 김포공항의 장비를 이전했던 일을 소환해 본다.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일이고 단번에 착오 없이 끝내야 했다.

지금도 23년 전 일이지만 생생한 이유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는데 피하고만 싶었고 위기로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니 난해한 일을 처리하는 방법과 중압감을 이겨내는 배움의 기회였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모든 일의 시작은 어설프고 불안하지만 자주 다루고 시간이 경과하면 점차 익숙해지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장비를 옮기는 단순한 이사로 생각했는데 여러 차례 검토를 거치고 보니 개별 장비의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옮겨야 제대로 개항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

이후 모든 장비는 기능 유지를 위해 수송 차량에 탑재했고 위험지점 파악과 모의훈련을 통해 사전에 문제점을 꼼꼼히 보완할 수 있었다.

종종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 매체에 대표자가 나와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라고 머리 숙여 말한다.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에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는데 나중에 보면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지거나 흐지부지 처리되어 우롱당한 기분이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보다 대표자가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전에 취약점과 위험요소를 알 수 없으니 선제적 관리가 부재하고 따져 보기 전에는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일을 대표자가 직접 관리할 수 없지만 중요한 일은 직접 파악하고 챙겨야 적극적인 위기 대처가 가능하고 모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2010년 4월 14일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유럽 내 공항이 폐쇄되어 유럽행 승객들이 발이 묶여 인천공항 대합실에 체류하게 되었던 사태도 다시 생각해 본다.

당시 어려움에 처한 여행객들을 누구도 선뜻 지원하려 나서지 않았다.

이유는 천재지변이라 책임이 없고 먼저 나섰다가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우려였다.

태풍과 장마 같은 천재지변으로 이재민이 발생하면 같은 이유로 방치하겠는가?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입장이 다르며 여타 지역으로 여행하는 여객들의 불편을 고려해 망설임 없이 인도적 지원을 시작했다.

전담 직원을 배치하고 운항이 재개될 때까지 식음료 제공과 터미널 내에 별도 공간을 할애했다.

이 사건은 공공기관의 역할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일을 위임하면 수임자 입장에서는 업무가 추가되어 탐탁지 않고 책임 전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일을 분할해 위임하고 중간에 관여하기보다 독립적으로 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자율을 보장하고 위임받은 직원이 업무에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

위임은 부담시키거나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경험을 축적하고 관리자로서 리더십을 미리 배우는 기회이다.

위임하고도 중간에 간섭(감시?)하면 갈등이 생기고 소극적인 업무처리로 성과보다 부작용이 커진다.

위임의 근간은 상호 신뢰이기 때문이다.

화산재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전담 직원을 지정하고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사태가 종료되어 유럽 여행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며 원더풀 코리아와 인천공항을 외쳤고 각 국 대사관에서는 자국 국민지원에 대한 감사의 서한을 보내왔다.

윤한영 한서대학교 항공융합학부 교수
윤한영 한서대학교 항공융합학부 교수

비록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지만 그 때의 일들은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는 새로운 일을 만들기보다 있는 일들을 새롭게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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