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유재풍 변호사

설을 맞아 무주에서 사흘을 보냈다. 설 이틀 전에 콘도에 도착해 다음 날 아들 손자와 함께 3대가 스키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 도착한 형님댁과 저녁 만찬을 나누며 즐겁게 지냈다. 설날 아침은 함께 모여 감사예배와 세배를 드리고, 준비한 떡국을 먹으며 14명의 가족이 정을 나눴다. 이어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일부는 걷기, 일부는 스키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귀가했다. 저녁에는 조카딸네가 세배하러 와서 함께 식탁을 나눴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설 명절을 보낸다. 내가 스키를 좋아해서 대개 스키장 콘도를 예약해 형님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인다. 함께 예배드리고, 세배하고, 덕담 나누고, 관광과 놀이도 한다. 아예 제사나 예배 없이 가족들이 자유롭게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 명절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 시작된 설날을 일제가 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 '구정'이라며 양력과세를 강요했다. 해방 후 정부도 계속 양력과세를 하라고 해서 오랫동안 휴일 지정도 안 하다가,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하루 휴일로 지정되었다. 1989년에 이르러 비로소 '설날'이라는 본명을 되찾고, 1999년부터 3일 연휴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구정'이라는 일제 용어를 사용하는 이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 탓이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조상께 감사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설날은, 추석과 함께 세계에 자랑할 우리 고유명절이다. 이번 설을 지내면서 새삼 설날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설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사랑과 정을 나누는 귀한 기회이다.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라서 평소 혼사나 애사 때가 아니면 잘 모일 수 없다. 그나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있어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정을 나눌 수 있다. 21세기 나노(nano) 사회에 살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는 시대에 이보다 더 귀한 가족 만남의 기회가 없다. 부모 형제, 자매, 자녀들 3대가 함께 모여 정을 나눌 귀한 기회다. 그래서 설이 좋다.

설은 조상에 대한 감사 제사로 시작하지만, 이웃에게 감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 해 동안 신세 진 이들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전하며 감사할 수 있어 좋다. 나는 1월 마지막 주에 이미 신세 진 이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전달했다. 또 다른 이들로부터 이런저런 선물을 받아, 다른 이웃과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참 귀한 일이다. 이렇게 서로 감사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설명절덕분이다. 목사님이 설교 도중 우리나라 국민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한 해에 두 번씩 인사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는 말씀을 했는데, 참으로 공감 가는 일이다. 두 번씩 감사하며 새해 인사를 하는 민족, 한민족의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

설은 가족, 이웃과 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명절 연휴를 이용해서 평소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많은 이들이 그런 것처럼 해외나 국내나 가족끼리 또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번의 경우 나흘이 되기 때문에 전후로 하루씩만 더 붙이면 웬만한 국내외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때로는 아예 전후 며칠을 덧붙여 장기 여행을 하기도 한다. 연휴 동안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사색의 시간을 보내거나 평소 쌓아놓았던 책을 섭렵하거나, 또는 OTT의 시리즈물 드라마를 아무 간섭없이 즐길 수도 있다. 그야말로 쉼과 휴식,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설이 좋다.

설은 자신을 돌아보게 해서 좋다. 대개 새해 맞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설이 닥치므로, 새해 세웠던 계획과 소망을 재점검하며 다시 출발하는 계기가 된다. 계절적으로도 긴 겨울의 끝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중간지점이어서 적절하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입춘(立春)과 함께 새롭게 봄맞이 준비를 할 수 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설 지나면 더 이상 겨울에만 머물 수 없다. 나도 그렇다. 지난 한 달여를 돌아보고, 연초 품었던 꿈과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하며, 구체적으로 이 한 해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다시 생각해 본다. 이렇듯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설이 좋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인구위기, 기후 위기, 국민을 졸(卒)로 보는 정치 등 주위를 돌아보면 걱정거리 가득한 세상이지만, 설날을 맞아 하나님과 조상께 감사하고, 가족과 이웃 간의 정을 도탑게 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봄을 준비할 수 있으니 좋다. 이런 명절의 전통을 잘 이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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