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어느새 바람이 순해졌다. 건널목을 건너오는 소녀가 배시시 웃는데 꽃 위의 나비같이 산뜻하고 예쁘다. 소녀는 분홍 옷을 입고 눈이 올라갈 정도로 머리를 꼭 땋아서 분홍리본을 매었다. 그날 배운 인사를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오느라 혼자 쳐졌나 보다. 오솔길이 무서웠는지 뛰기 시작하는데 "우리 영 돼지 오네. 오늘도 인사하는 거 해보고 오는 거지." 선친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인자한 모습은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니 봄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움을 먹고 사는 봄비가 샐녘의 꿈으로 화했으리라. 꿈에서도 그리운 아버지를 뵐 수 없음이 야속하고 아쉬웠다. 소녀가 어린 시절 그리움이 되어 반백 년 전 박제 된 모습으로 환치되었음이다. 모든 작가에게는 나르시시스트 적 기질이 있다. 라고 하는 아나 소오꼬의 말이 쓴웃음이 되어 스쳐 갔다,

아버지는 소도시에서 한약방을 하셨는데 서울까지 가서 입학식에 신을 분홍색 구두와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책가방을 사 오셨다. 엄마보다 먼저 가시려고 그랬는지 엄부자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정다감하셨다. 어린 소견에 영 돼지라고 부르는 게 싫었고 메는 가죽가방은 남자 책가방 같다고 뾰로통했으니 철부지 어리광쟁이였다. 그 시절은 의료부족으로 어릴 때 많이 사망해서 일부러 돼지나 바위 등 흔한 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하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이야기를 듣고 책가방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틈틈이 연필을 쥐여 주고 쓰기를 가르쳐 주셨고, 하늘 천 따지로 시작해 이끼 야로 끝나는 천자문도 한 자 한 자 가르치시며 칭찬하셨다. 지금도 웬만한 일은 크게 겁내지 않으니 어릴 때 부모의 칭찬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지 체감했음이다.

꿈에 실루엣만 보여준 아버지 이야기를 노환으로 누워 계신 어머니한테 들려드렸다. 대뜸 나 고생하라고 8남매 남겨 놓고 먼저 간 양반 얘기는 뭐 하려 하느냐고 손사래를 치신다. 컨디션이 좋으실 때는 그래도 너희 아버지가 잔정이 있어 동생들 낳을 때마다 불수산을 손수 달이고 탯줄을 끊었다고 자랑하셨다. 오늘은 몸이 불편하신 날인가 보다. 동생들 출산할 때는 싱싱한 대궁에 옥수수 열리듯 푸르렀었는데. 이제는 그런 때가 언제 있었는지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껍질이 흙 위에 나뒹구는 형상이다. 존엄한 인간의 한평생이 식물들의 한살이와 다르지 않음이 서글프다.

어머니는 1년 전까지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걸을 만큼 건강하셨다. 좋아하던 비단이불에 미끄러져 넘어진 다음부터 운동 신경을 다치신 것 같다. 젊은 사람 같으면 수술할 텐데 연세가 높으시니 전신마취를 할 수가 없다. 당신이 무슨 수술이냐고 펄쩍 뛰며 용변을 방에서 해결하니, 모시고 있는 동생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우선하여 자주 가서 뵈려 하지만 다른 일과 겹쳐서 쉽지 않다. 요양원에 모시자고 하면 그럴 시 바로 돌아가실 거라고 동의하지 않는 동생이 기특하고 안쓰럽다. 그만한 효자를 두신 것도 당신의 복이지 싶어 감사해진다. 한 번은 어머니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그러면 요양원 보낸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나는 너희 8남매를 키웠는데 너희들은 하나뿐인 어미도…"라고 하셔서 죄인 된 심정이었다. 아직은 정신이 온전하시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아이같이 감정이 수시로 변하여 내 어머니지만 야속할 때가 많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 우리 모두의 일이 되어가니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대처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지인이 모시던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보냈는데 서로 밥을 넘길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닷새 만에 다시 모셔 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내 일처럼 울컥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우리 어머니도 그럴 것이니, 아예 생각하지 말자고 세뇌하고 있다. 그리움이 새싹처럼 돋아나는 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어머니께 사랑으로 포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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