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안길웅 수필가

"얘들아! 어서 나와 망우 례 하자."

"…망우 례?"

할아버지 목소리에 사촌형과 나는 영문을 모른 체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할아버지는 묶음 매듭이 많은 볏짚 단을 형에게 매듭이 적은 것은 나에게 주고 짚단 끝 쪽에 불을 붙였다.

"앞산위로 달이 뜨면 이 볏단이 다 탈 때 까지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소원을 빌 거라,"

앞산 위로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사촌형과 나는 달을 향해 불타는 볏짚을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소원을 빌었다.

나는 키 좀 크게 해주고 보리밥 대신 쌀밥을 매일 먹게 해 주고 엄마의 발가락을 빨리 낳게 해 달라고 달님에게 빌었다.

"형! 형은 무슨 소원 빌었어?"

"비~밀."

세시풍속은 일정한 생활권에서 계절과 연관 되어 매년 반복되고 행해지는 풍속이다.

그중 대보름은 세시풍속 중 가장 큰 명절로 꼽힌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음력명절을 아예 쇨 수도 없었고 6.25 사변이후 국가재건사업에 몰두하느라 명절 쇨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5,16 군사혁명 다음해인 1962년 1월1일부터 서력을 쓰면서 음력자체를 아예 사용할 수 없게 하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이중과세(二重過歲)를 하여 단속반까지 생겼고 공무원이 있는 우리 집도 어쩔 수 없이 신정을 쇠어야 했다.

한편 농촌에서는 농사절기가 음력에 맞추어져있어 양력만으로는 농사 짖기가 불편하다는 청원에 달력에 음력을 삽입하는 등 정부가 한발 물러섰으나 지금껏 대보름을 예전처럼 쇠는 가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근간에 지방 축제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지만 전통문화 축제를 여는 곳은 대여섯 곳에 그치고 전통을 이어갈 세대들은 출처와 의미도 모르는 '무 슨 무슨 데 이' 같은 외국 문화에 맛 들이고 중독되어 대보름이나 단오, 한식이 4대 명절인지 무형문화유산에 들어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대보름은 달의 정점이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 처음 맞는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뜨는 날이다.

우리민족은 달을 보고 기후를 예측하거나 사람의 길흉도 점치며 혹여 올지도 모를 횡액에 대비하려는 마음에서 달집을 태우고 망우 례(忘憂禮)=(볏짚 한 묶음에 나이 수만큼 짚으로 묶은 뒤 횃불을 만들어 달을 향해 위 아래로 흔들며 소원을 빈다)를 올리기도 했다.

명절은 소보름인 열나흘부터 시작된다.

아홉 가지 나물과 오곡밥을 지어 남자들이 나무 한 짐씩을 해 올 때 마다 먹였는데 이는 겨울동안 느슨해졌을 남자들의 근력(根力)을 높여주고 농사 시작 전 땔감도 미리 확보하고자 했을 것이다.

보름날 아침 눈도 뜨기 전 할머니는 나와 사촌형 입안에 땅콩을 밀어 넣고 이빨로 한 번에 으깨진 땅콩을 마당에 던지며 "부스럼아 멀리가라! 부스럼아 멀리가라" 며 외치시고 귀밝이술이란 것을 한 모금씩을 마시게 하고는 '귀야 밝아져라! 귀야 밝아져라!' 하시며 술을 귓바퀴에 발라주기도 했다.

또 남자들이 나무를 해 올 때 마다 밥상을 차려 냈으나 아홉 짐을 해온 사람은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회관마당에 모여 옥신각신 큰 소리를 내며 대동회라는 회의를 하느라 온종일 바쁘고 아이들은 얼음이 녹아 질퍽이는 논바닥에서 썰매를 타거나 쥐불놀이 한다고 논두렁에 불을 질러 도망 나온 쥐를 잡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나는 구멍 난 깡통에 불붙은 솔방울을 넣고 끈에 매달아 빙빙 돌리는 불놀이를 하다가 불똥이 튀어 단벌솜저고리를 태워먹고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위에 떴지.

달달 무슨 달 낮과 같이 밝은 달 어디어디 비추나 우리 (마음) 비추지.

달달 무슨 달 거울 같은 보름달 무 엇 무엇 비추나 (수자) 얼굴 비추지.

안길웅 수필가
안길웅 수필가

달집태우기가 끝나면 어른들과 아이들은 농악대를 따라 춤을 덩실 덩실 추며 마을로 들어가고 처녀 총각들은 사그라지는 불더미 주위에 둘러 앉아 수건돌리기도 하고 개사하여 부르는 달 노래에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자지러지면 새들도 밤을 지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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