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소정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선임전문관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매만지면서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다음 날 아침에 후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인터넷 기사와 쇼츠 영상들을 보면서 잠이 든다. 이러지 않고 잠들면 괜히 손해를 보는 듯한 기분까지 느껴가면서.

이러한 하루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록을 남겨가는지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기록과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 하나, SNS에 업로드한 사진 한 장, 그리고 인터넷 기사에 누른 '좋아요' 버튼 하나까지도 모든 게 다 우리가 보낸 오늘에 대한 기록들이다.

'오늘'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나가 버리는 시간일 뿐이지만, 그 '오늘' 속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이라는 것은 수많은 형태로 '기록'됨으로써 오늘의 시간에 대한 '기억'이 남게 된다.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 어두운 동굴에 사냥하는 모습을 남겼던 고대인들처럼 우리도 계속해서 우리 삶의 부스러기를 남기고 있다.

우리가 어려움과 방황 속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앞서 비슷한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 남겼을 삶의 부스러기, 기록 속에 남아있을 지혜와 해답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 속에서 현재의 우리와 같은 모습을 찾았을 때,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이 어두운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얻게 된다.

지난 11월 개관한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는 이러한 삶의 부스러기들 가운데서 전 인류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기록유산인 '세계기록유산'이 계속해서 보호되고 전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이 세계기록유산들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고, 중요하겠냐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기록들 속에 숨어있는 인류의 기억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과 영감을 주는 존재일 수 있다.

발트 연안 3개국의 국민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670㎞가 넘는 인간사슬을 만들어 전 세계에 이들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순간을 담은 세계기록유산처럼, 사람들이 희생되어가는 안타까운 오늘날의 국제적 상황 속에 '자유'와 '독립'의 의지가 어떠한 의미일 수 있는지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이소정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선임전문관
이소정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선임전문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남매들이 하얀 조약돌을 활용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기록에 담긴 기억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혹은 돌아가야 할 곳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인류의 기억을 담은 세계기록유산 속의 이야기들처럼 우리 삶의 부스러기는 어떠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 어떻게 담아내면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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