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재의 클래식산책]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음악평론가

1974년 영국 일리대성당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연주하는 지휘자 번스타인
1974년 영국 일리대성당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연주하는 지휘자 번스타인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지휘자를 "작곡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소리를 생산하는 많은 사람과 협업하여 그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지휘자'의 어원이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는 '전도체(Conductor. 傳導體)'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라는 의미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리에 대한 완벽한 레시피가 있더라도 손맛과 같은 레시피에 담을 수 없는 요리사 고유의 개성과 미감(味感)에 따라 음식의 맛은 크게 차이가 난다. 고전음악 역시, 후기 낭만파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말러(Mahler)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에 없다"라고, 말했듯이 악보에 담을 수 없는 작곡자의 숨겨진 의도와 미묘한 뉘앙스를, 지휘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고전음악의 역사로 잠깐 눈을 돌려보면, 고전음악은 20세기 초, 난해한 현대음악(新音樂)의 등장과 함께 대중에게서 멀어지면서 '작곡가의 시대'는 사실상 변증법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고전음악은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같은 18세기 및 19세기 작곡가들의 음악을 무한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다윈적인 진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 해에도 수천 장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수만 번의 연주가 공연되지만, 연주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 당연하게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고전음악 연주가 몇몇 스타 지휘자의 후광 아래서 음악의 빛을 쬘 수밖에 없는 '지휘자의 시대'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즉, 작품들의 유의미한 해석이나 감동의 차이는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좌우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는 어떤 분야의 리더 못지않은 다양한 덕목이 요구되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 지휘자 키릴 콘트라신이 말했듯이 "뛰어난 상상력, 화성과 음색에 민감하고 고도로 발달한 청력, 냉철한 의지력, 입체적 표현력"과 같은 예술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이상적 지휘자는 키가 크고 잘 생겨야 하고, 얼굴은 창백하면서 고압적이고 신비하면서 마력이 있고, 표정은 고귀한 고뇌로 가득 차야 한다"는 영화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나오는 표현과 같이 연기적 자질도 필요로 한다. 같은 음악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연주해 오는 전문가 집단인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영감을 주는 한편, 음악애호가이자 스타를 갈망하는 평범한 청중들의 기호 또한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휘자는 많지 않다. 더욱이 음악해석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준 위대한 지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9∼1990),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2004) 및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와 같은 지휘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과 카리스마, 특출난 외모와 표현력으로 수많은 명반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광범위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번스타인이 영국의 일리(Ely) 대성당에서 1974년 연주한 말러 제2번 교향곡 <부활>은 지휘자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자기도취적 지휘 모습과 유체 이탈한 듯한 표정, 몰아의 경지에서 부르는 노래는 마치 부활의 순간을 맞이한 열혈 신자의 모습과도 같다. 이것은 최근 개봉되었던 번스타인의 전기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한편 클라이버가 1975년 지휘한 베토벤 제5번 교향곡 음반은 "넘쳐나는 음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불과"하리라는 비평가들의 예상과 달리 발매 후 "호머가 일리아드를 낭송하기 위해 되돌아 왔다"라는 지상 최고의 평을 받았다. 각각 다른 개성의 소유자들이지만 공통점은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집요한 추구에 있었다. 카라얀은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음향을 얻기 위해 리허설과 녹음실에서 편집광적으로 음향을 가다듬었으며, 아바도는 "음악이란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을 줄 아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낮은 자세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하였다.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음악평론가

이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아름다움이란 진실이 갖는 광채이며, 그 광채는 모든 이를 매혹시킨다"라고 말했듯이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 보편적 진실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연주에 매혹되고 있는 이유다. 바야흐로 봄이자 정치의 계절이 왔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는 '나는 춤이다'라는 소설에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찰나에 사라질 거짓로 현혹시키기보다는 영원한 아름다움인 진실의 광채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위대한 정치인의 도래를 기대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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