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문근 단양군수

오는 7월 1일 개원하는 단양군 보건의료원 전경.

우리 단양군은 지난 2015년 하나밖에 없던 병원이 폐업한 이래 지금까지 병원이 없는 군이 되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283명의 급성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여 겨우 6명만 살았으니 생존율이 2.1%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전국 평균의 1/4에도 못 미친다. 살 수도 있었는데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인구도 적으니 들어올 민간병원도 없다. 그래서 30병상의 병실을 갖춘 군립 보건의료원을 설립 중이다. 보건의료원은 병원의 여건을 갖춘 보건소를 말하는데 기존의 보건사업 외에 진료와 입원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 어려웠던 보건의료원 의사 채용

오는 7월 1일 개원을 목표로 최근 원장과 전문의 4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국 15개 보건의료원 중 최고의 연봉을 제시했지만 3회에 걸친 채용공고에도 원장과 응급의학과 의사 1명은 아예 응모하는 의사가 없었다. 응급의학과 의사의 경우 4회째 공고에서 연봉을 10% 올린 4억 2,240만 원과 숙소(아파트)는 물론 별장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서야 채용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연봉은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 소득세로 공제하게 되므로 전액이 실소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재정여건이 어려운 우리 군이지만 의료복지에 대한 군민의 갈증이 워낙 크기에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보건의료원을 개원한다고 해도 수술도 불가능하고 응급의료와 입원진료만 수행하게 된다.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의료 사각지대인 것이다.

● 군민 최대의 관심사는 의료문제

우리 단양군은 노인인구가 36%에 이르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적성면의 경우50%에 이르고 있고 전체적으로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늙으면 아픈 곳이 많아져 병원을 자주 찾게 되는 법이라 그런지 우리 군민의 최대 관심사는 의료문제임을 수없이 확인하고 있다. 남녀노소 만나는 사람마다 제발 병원 좀 만들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마침 단양군 보건의료원도 신축 중이라 어느 지자체보다도 의료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연구용역도 했고 설문조사도 했다. 다양한 경로로 의대정원 확대를 건의해왔다. 그래서 최근의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환자 곁을 지키는 대부분의 의료진의 노고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지만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우려스럽다. 전임의와 의대교수들의 동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어 장기화될까봐 안타까운 마음으로 필을 들어 본다.

● 우리 군의 입장에선 의대정원은 많을수록 좋다.

먼저 발등의 불인 의대정원 확대는 인구소멸 위험을 겪는 우리 군의 입장에서는 다다익선이다. 과거에는 변호사 만나기도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그간 변호사는 많이 늘어나 국민들이 접하기 쉬워졌는데 의사는 여전히 귀하기 이를 데 없다.

1977년 건강보험이 도입된 이래 대학 정원은 6만명에서 45만명으로 7.5배 늘었지만 의대 정원은 2.2배 증가에 그쳤다. 국민의료비는 511배 늘어났지만 의사수는 7배 늘어났을 뿐이라고 한다.

인구 1천명당 임상의사 수는 우리나라는 2.6명으로 30개 OECD 국가 평균 3.7명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한의사를 빼면 2.1명으로 최하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년간 우리나라 의대정원은 의사협회의 반발에 부딪혀 단 한명도 증원치 못해왔다. 지금 증원한다고 해도 환자진료하려면 10년 이상 지나야 하는데도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나라 의사 1명의 한해 평균 진료환자 수는 OECD 국가 평균의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격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의대정원을 묶어 두자면 어쩌자는 얘긴가?

모든 게 귀하면 비싸고 흔하면 싼 법이다. 희소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최고의 선망 직종이다보니 당연히 최고의 수재들이 몰린다. 학원가에선 초등학생 의대반까지 생겼을 정도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대체가 안 되는 구조이니 끌려갈 수 밖에 없다.

과거 정부에서는 의대정원을 확대하고자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이번처럼 의사협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2천년 의약분업 사태 때에는 오히려 의대정원을 10% 줄였다. 그러니 의사협회에서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의대정원을 확대하지 말라는 의사협회의 집단행동을 다시 보면서 오히려 의대정원 확대가 정말 시급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의사가 많아져 의료분야에서도 건전한 경쟁과 시장의 원리가 작동돼야 한다. 환자를 위해 어느 병원이, 어느 의사가 더 잘 치료하고 더 친절하며 더 저렴한지 경쟁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자는 한정된 시스템이다보니 공급자의 권력이 정부는 물론 수요자인 국민을 능가해왔다. 의사협회의 의대정원 확대 반대는 결국 이러한 현재의 시스템을 흔들지 말자는 것이다.

특권의식, 선민의식의 발로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을 위한 윤리의식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보도에 의하면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국민이 70∼89%에 달한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민주·한국 노총, 종교계,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에서는 사회정의와 공익적 차원에서 이번에야말로 결코 물러서거나 타협해서는 안된다.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 '응급진료를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아울러 큰 틀에서 '응급진료를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헌법에 담아야 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 제12조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응급시 '의사의 진료를 받을 권리'는 헌법에 없다. 신체의 자유권보다도 생명권이 더 중요하므로 헌법상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응급진료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 응급의료 중심의 공공의대 설립

이를 위해 필수의료, 특히 응급의료 중심의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지만 개념정의 등 세부사항에 합의치 못하고 있다. 우리 단양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응급의료'이다. 이번에 군립보건의료원 의사 채용시 가장 어려웠던 분야가 '응급의학과'였다. 우리 군을 비롯한 전국 보건의료원마다 연봉이 가장 높은 분야가 역시 '응급의학과'이다. 아마도 철야 근무하는 격무라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부족한가보다.

따라서 의사들이 성형외과 등 비필수의료 분야로 쏠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면 현행 치의예과처럼 아예 대학 입학시부터 핵심 응급의예과 등 응급의료와 관련한 몇 개의 학과만을 별도로 모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것도 비수도권 지역에 별도로 '국립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 그래서 10년 후에는 치료 골든타임 내에 제대로 진료를 받아 생명을 잃지 않도록 국가책임제로 응급의료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 지방소멸 위험지역에 일정기간 근무토록 해야

또한 의료법을 개정하여 '수도권에서 병의원을 개업하거나 종사하려는 의사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지방소멸 위험지역에서 일정기간 근무'토록 해야 한다.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에 의한 초등교원의 경우 일정기간 오·벽지에 근무해야 도시지역 근무자격과 승진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가 잘 정착되고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국민의 생명권 보호를 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간 각종 의료개혁은 여러 번 논의되다가 의료수가 등 비용문제, 보상, 지원, 용어 정의 등 디테일한 문제에 부딪혀 시행을 못 해왔다. '악마의 디테일'로 큰 틀의 본질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병원이 없는 우리 단양군민은 양질의 응급의료 기능이 가장 큰 소망이다. 의료문제가 열악하니 귀농귀촌도 꺼리고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지방소멸 위험지역' 89개 시군 모두 같은 실정이다. 2년전 경찰병원 분원을 유치하기 위해 전국 19개 시군에서 사활을 건 경쟁이 잘 증명하고 있다. 지방소멸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지원을 통한 개발사업도 중요하지만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라고 본다.

김문근 단양군수
김문근 단양군수

이번에야말로 의대정원 확대를 비롯한 의료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단양군을 비롯한 농촌이 살고 지방이 살고 국민이 좀더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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