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장병갑 사회부장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촉망받던 공무원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채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안타까운 죽임을 맞이하는 경우까지 생기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포트홀(도로 파임) 공사 관련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던 김포시 9급 공무원(39)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A씨는 회사에 다니다 공무원이 된 지 1년 6개월 된 늦깎이 공무원이다. 시에서 도로 관리 및 보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번 겨울 눈이 오는 날이면 도로 제설 민원에, 제설 후에는 포트홀 발생 민원에, 최근에는 김포한강로 포트홀 노면 보수공사에 따른 교통체증 항의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 댓글은 물론 근무 시간 항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시민들이 무섭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하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청주시 공무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월 청주시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비가 적게 나왔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민원인으로부터 욕설과 협박을 당했다. 이 민원인은 이를 말리는 다른 민원인을 밀치기까지 해 결국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화 응대 시 전화를 끊지 않으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업무를 방해하곤 한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공무원이 이래도 되냐며 큰소리 내기 일쑤다. 욕을 먹으면서도 전화를 끊지 못한다. 핸드폰 요금이 연체됐다며 해결을 요구하는가 하면 병원에 동행해 달라는 상식 이하의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다. 거주시설이 열악한 시민을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연계해 줘 보다 좋은 환경의 주거 공간으로 이사를 했지만 이사 과정에서 물건이 파손됐다고 공무원을 탓하기도 한다. 큰 뜻을 갖고 공직에 입문한 신입 공무원들이 혀를 내두르며 사직서를 제출한다. 청주시 행정의 최일선인 행정복지센터는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갑질로 공직사회가 멍들고 있다. 민원인의 폭언과 협박으로 고통받는 정도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국가 공무원의 감정노동에 대한 정부의 첫 실태조사 결과는 과히 충격적이다. 인사혁신처가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1만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감정노동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참아서 해결한다'는 응답이 46.2%에 달했다. 심지어 감정노동으로 질병이 발현되는 경우에도 10명 중 6명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갑질 민원의 예로 '장기간 응대, 무리한 요구로 업무방해'(31.7%), '폭언·협박'(29.3%), '보복성 행정 제보·신고'(20.5%) 등이 꼽혔다. 가장 가까이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청주시 등 지방공무원은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측된다.

장병갑 사회부장
장병갑 사회부장

불과 2~3년 전만 해도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취업난과 경제 상황이 맞물리면서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청년층이 몰려들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처럼 어렵게 임용돼 현재 최일선에서 민원인을 응대하고 있는 이들이다. 소위 우리 사회에 엘리트로 불리는 청년들이 대거 임용되면서 공직사회 수준도 그만큼 향상됐다. 그러나 갑질 민원인 등으로 이들이 어렵게 임용된 공직을 버리고 떠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가와 지방행정의 근간인 공무원의 정신 건강 상태가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공무원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제대로 치유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속히 공무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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