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봄을 알리는 개복수초 노란 꽃술을 보며 신났다. 황금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야생화를 볼 때 느끼는 거지만 생명은 참 경이롭다. 노란색 주걱모양을 한 수많은 수술이 가장자리에 있고 그 중심에는 동그란 암술이 선명한 꽃. 미나리아재비과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수술과 암술이 꽃의 중심에 모여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꽃도 꽃잎 안이 오밀조밀하다.

언 땅 녹이고 2월에 핀 꽃. 땅을 흔들어 깨우며 봄을 이고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들 붙들고 저 이쁜 꽃 좀 보라고 자랑하고 싶다. 조밀한 그곳 땅의 숨소리가 들린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기 위해 땅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운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느라 뿌리에 저장된 영양분을 거의 다 소모하였을 테다. 복수초는 햇볕 좋은 날만 꽃을 피우고 저녁이 되면 꽃을 닫는 데, 힘을 아껴 곤충이 활동하는 시간에만 꽃을 피워 수정하는 것이다. 햇볕을 좋아하기에 큰 나무 밑에서는 살 수 없으므로 녹음이 우거지기 전에 종자를 맺고 휴면에 들어간다. 씨를 뿌려 꽃을 보기까지는 6년 정도가 걸린다니 6번의 겨울 찬바람을 버텨 내고 핀 꽃이 내 눈앞에 있다.

이 꽃을 보려고 힘들게 왔다.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를 갈 때 혼자 하는 걸 꺼렸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도 있지만 두려웠을까?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리라.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내가 되리라, 다짐하지만 생각보다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꼭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군가 이야기를 해 주어도 조바심이 난다.

발에 밟힐까 조심스럽게 꽃 사진을 찍으며 고 박완서 님의 '꽃 출석부'란 수필이 생각난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작가의 집을 아이들과 방문한 적이 있다. 대문 앞부터 마당 가득 꽃과 나무가 많았다.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작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온화하신 분이었다. '꽃 출석부'에서는 온갖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고 속삭인다.

볼품없는 겉모습에 하찮은 잡초처럼 여겼는데 작은 풀꽃의 머리칼 같은 뿌리로 땅속에서 따뜻한 지열을 올려 두터운 눈을 녹이고 핀 복수초에 박수를 보낸다. 또 샛노랗게 빛나는 복수초를 보고 순간 중학생 아들의 교복 단추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마당으로 나가 '출석부'를 부른다. 작가가 작성한 꽃과 나무의 출석부는 100번을 훌쩍 넘긴다. 복수초,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산수유, 목련, 매화, 영산홍,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작은 생명들과 함께 햇살 받으며 조곤조곤 말씀하셨던 그분의 모습이 선하다.

"나는 그것들이 올해도 하나도 결석하지 않고 전원 출석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들이 뿌리로, 씨로 잠든 땅을 함부로 밟지 못한다."라며 꽃들이 출석할 때마다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했다고 적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처럼 출석을 부르지는 않아도 올해는 시기별로 철 따라 피어나는 야생화를 적어보려고 노트를 샀다. 빼곡하게 적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기 순서에 따라 조용히 피었다 지는 꽃을 따라가다 보면 올 한 해 기쁨으로 벅차지 않을까.

복수초(福壽草)는 복과 장수를 의미하는 꽃이다. 꽃이 황금색 잔처럼 생겼다고 측금잔화(側金盞花), 설날에 핀다고 원일초(元日草), 눈 속에 핀 연꽃이라 하여 설연화(雪蓮花), 얼음 사이에서 피어 '얼음새꽃', 눈을 삭이고 올라와서 '눈색이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가 반한 남자, 아도니스라는 예명도 있다.

살짝 벌어진 꽃을 보면 황금잔 같다. 아궁이에 지핀 노란색 불꽃 같기도 하다. 내 고향 증평에서 피어난 꽃을 보니 어머니가 더 생각난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달력은 아직 겨울인데 꽃시계는 완연한 봄이다. 이제 여기저기 폭죽 터지듯 피어날 봄꽃 소식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다른 식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 자리다툼을 시작하면 개복수꽃은 벌써 저만치 물러가 있다. 일찍 피어나 행복과 부귀와 장수를 가져다준다는 개복수초, 더 많은 행운을 빌어본다.

키워드

#아침뜨락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