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안길웅 수필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오십대 중반의 일본 여성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 용준의 찐 팬이라고 했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배 용준 팬 사인회에 참석하고 첫 키스 씬 촬영 장소인 남이섬을 거쳐 프랑스로 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류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인들은 19세기부터 섬 밖 세상을 동경했다. 그들은 비행기와 군함을 만들어 소련을 공격하여 승리하자 나치독일과 한통속이 되어 인류 최대 비극인 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미국령 진주만 까지 공격했다. 참다못한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해서야 일본의 전쟁 광기를 멈추게 하였다. 이후로 일본은 무기대신 산업기계와 전자제품 수출로 국가경제는 좋아졌으나 국민들은 전쟁 후유증과 잦은 지진, 그리고 오랜 디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던 터에 한류(韓流)라는 새로운 모멘트를 찾아냈으며 2023년도에 일본인들의 k팝 공연 관객 수가 275만 명을 넘었다는 것은 한류가 사막이나 다름없던 그들의 삶에 오아시스가 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우리의 k-pop과 K-food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BTS공연을 보려고 국경을 넘어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몰려들고 어느 나라에서는 김밥과 라면 김치를 사려고 새벽부터 매장 앞에 장사진을 치는가 하면 각국 대학캠퍼스 부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면 입학시험을 치러야하고 그것도 상위권에 들어야 수강이 가능하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고도성장하면서 주거 환경은 선진국 수준을 앞지르고 사회 기반시설 전반이 현대화로 확장 되었으며 전국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고속도로에는 자동차로 넘쳐 나고 인천공항은 여행객들로 하여금 시도 때도 없이 붐비고 있다. 또한 우수한 의료 시스템과 늘어난 복지혜택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장수 국가가 되었다.

5-60년대에는 '죽지 못해 산 다' 고 했지만 90년대에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라고 했고 20세기에는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고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해외여행을 이웃집 마실 가듯하고 주차장엔 외제 자동차가 즐비하며 이름난 맛 집은 어딜 가나 식객(食客)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비대해진 육신을 다이어트 하는데 돈을 펑펑 쓰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149개 나라 중에 57위다. 이는 전후세대들이 국난과 빈곤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 자신의 행복을 포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요즘세대들이 행복기준을 너무 높이 잡았을 수도 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북극권에 치우쳐있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된 국가이며 백야(白夜)와 산타크로스 그리고 사우나로 유명하다. 년 중 9개월이 영하 10도 이하이며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에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핀란드는 일 년 내내 춥고 해가 짧아 노동시간이 부족하고 수입도 적은 편이지만 현실에 만족하고 자연 환경에 순응하려는 국민성이 행복지수를 높인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평생 근심 걱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빈번한 외침에 살아남아야 하고 사계절이란 기후환경에 적응 하느라 근심과 걱정을 문신처럼 지니고 살다보니 등 따시고 배부른 지금에도 사는 게 다 그러려니 하고 체념해 버린다.

사찰 화장실에 가면 해우 소(解憂所)라 적혀있다. 경봉(鏡峰)이란 스님이 나무토막에 써서 통도사 화장실 앞에 세워놓은 것을 전국 사찰에서 화장실이란 표시대신 사용 하고 있다.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라고 한다.

안길웅 수필가
안길웅 수필가

사는 게 즐겁다고 생각 하면 즐겁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게 마련이며 행복도 마음먹기 달렸다고 한다. 분수를 알면 어깨가 가볍고 욕심이 과하면 눈이 먼다는 말도 그냥 흘릴 말이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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