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재난관리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연령과 계층, 직업군에 대한 안전실태를 들어다볼 기회가 생긴다. 안전 취약계층이라 묶어 부르는 말 속에도 어린이, 외국인, 여성, 장애인 등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니 그 실태도 다양하다. 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이주 노동자의 안전실태를 조사한 일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통계들은 많이 발표 되곤 하는데 산업재해에 관한 통계는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일반 재난이나 안전사고 관련된 통계들은 수집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태를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주로 면담을 통해 현황을 파악한다. 게다가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통역의 도움을 거쳐야 하니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이주 외국인들에게 사고발생 비율이 높은 원인을 찾아가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몰라서' 당하는 사고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해 오면 1~2일의 집합교육만을 받고 작업현장에 배치된다. 이 교육에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내용들이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작업장에서의 마주하게 될 위험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현장에 배치된 이후에는 작업 공정에 대한 정확한 안내를 받기 어렵다.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이들을 지도할 시간과 인력의 여분은 없다. 특히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눈치껏 "OK"와 "YES"를 남발하게 된다. 한국인 사장이나 작업 선배들은 안전교육을 이행 한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는 교육 받은 것으로 기록된다. 크고 작은 사고들은 작업장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더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온풍기나 전기난로 같은 물건을 성인이 되도록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뜨거운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안전문제를 이야기 할 때,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마다 으레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을 쓴다. 모든 것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위험지각이 낮은 상태를 사고 발생의 원인으로 꼽는다. 불안전한 행동을 반복하더라도 사고가 잘 발생하지 않으니 설마 하는 생각을 가지고 불안전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불감" 이라는 감각으로 느끼지 못함의 문제라 할 수 없다. 감각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니 지식과는 구별되는 것이 맞다. 우리는 감각의 문제와 지식을 종종 혼동하게 되는데,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위험사회 속에서는 안전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배워서 위험을 인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식의 영역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지식은 특정한 누군가만이 배울 수 있는 심오한 것이 아닌 보통의 관심과 노출만으로도 충분히 학습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안전불감증은 안전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곧 "안전 무관심"의 문제로 귀결하는 것이 옳다.

단일한 사고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은 사건을 우리는 "참사"라고 부른다. 대구지하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서해훼리호, 세월호,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이태원, 오송 지하차도까지 수십년 간 비슷한 과오를 반복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안전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눈앞에 닥친 위험에도 무방비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위험인지도 모른 채, 도처에 위험이 방치되어 오히려 무감각해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안전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면 사고가능성이 높은 현상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는 일도 벌어질리 없다. 안전과 위험도 자연이 알게 되고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배워서 알아야 하는 것이며, 모르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모두 다치게 할 수 있는, 양해 받을 수 없는 잘못이 된다.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우리 국민은 안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민감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안전교육의 효과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안전문제에 대한 관심은 안전이라는 가치를 변화시킨다. 가치가 변화하면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한 비용의 투자를 비효율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위험에 닥쳐 사회가 지불하게 될 막대한 비용을 보험 든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관심이 생기면 애정이 깃들고, 그 후에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반복되는 사고에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안전에 대한 관심을 새로 불러일으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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